<제6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수상작>
김 화 순
750){this.style.cursor="hand"; this.title="원본보기"};' onclick="if(this.width>750){window.open(this.src)};" src="http://intranet.prooni.com/bbs/data/donghwa/web08_f_4.gif" align=right name=zb_target_resize>엄마는 여전히 누워 있었다. 인형처럼.
아줌마는 엄마 머리를 감겨 주고 있었다. 미용실에서 하듯.
엄마는 한 달 전 파마를 했다. 그 때도 미용실 언니가 머리를 감겨 줬다. 그 뒤로 엄마는 스스로 머리를 감지 못하고 있다.
나는 불만스럽다. 머리를 감겨 주지 않으면 깔끔한 엄마는 찝찝해서 당장 일어날 거다. 아줌마에게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지만 또 감겨 주고 있다. 나를 보고도 태연하게 인사를 할 뿐 당황하지도 않는다.
“하나 왔어? 겨울방학 했지?”
아줌마가 엄마 머리에 물을 부으며 말했다. 물은 미끄러지듯 엄마 머리에서 비누를 골라 내 양동이로 떨어졌다.
“씻기지 말랬잖아요.”
“언제까지?”
“엄마가 깨어날 때까지요.”
“나도 오래 기다렸어. 일 주일이나 세수를 안 시켰는데, 꿈적도 안 하던걸.”
하루에 두 번씩 샤워를 하던 엄마였다. 일 주일은 엄마를 시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엄마는 쉽게 일어나 주지 않을 모양이다.
그 동안 병원에 오면 엄마가 싫어하는 일만 했다. 아토피 때문에 엄마가 금지시킨 햄버거, 아이스크림, 과자를 마구 먹었다. 엄마가 한 번도 주지 않았던 컵라면을 열 개도 넘게 먹었다. 그 결과, 아토피가 심해졌다. 지독하게 가렵다. 가려워서 긁으면 시원하지 않고 따갑다. 예전의 엄마라면, “이하나 어디서 못된 음식을 먹고 있어. 뱉어!”라고 소리 지르며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 않은 것도 있다. 공부!
엄마 앞에서는 게임만 했다. 그래도 엄마는 반응이 없었다. 엄마가 식물인간이기 때문일까? 외할머니가 이모한테 울면서 전화하는 걸 들었다.
“야야, 하나 어미가 식물인간이 됐단다. 어쩌면 좋노.”
식물. 동물의 반대말. 꽃, 나무, 풀이 식물인데…….
식물인간이 뭐냐고 이모한테 물어 봤다. 이모는 말없이 날 꼭 껴안았다. 그래서 컴퓨터 사전에 물어 봤다. ‘대뇌의 손상으로 의식과 운동 기능은 상실되었으나 호흡과 소화, 흡수, 순환 따위의 기능은 유지하고 있는 환자’ 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엄마를 지켜 보며 차츰 알게 됐다. 식물인간은 수면인간이다. 엄마는 쿨쿨 자고 있다. 계속.
깨끗하게 씻은 엄마는 표정 없이 누워 있다. 아줌마는 손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고 있다. 엄마를 보살피는 간병인에서 남편을 만나러 가는 아줌마로 변신 중이다. 아줌마는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밤까지 쉰다. 대신 외할머니가 엄마를 보살폈다. 지난 주까지는.
아줌마는 모르지만 오늘밤엔 외할머니가 오시지 못한다. 외할아버지 제삿날이기 때문에 시골에 가셨다. 마침 아빠도 세미나에 가셨다. 할머니는 아줌마에게 오늘 밤 나랑, 엄마 곁에 있어 달라고 전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엄마랑 단둘이 있고 싶었다.
엄마와 나는 비밀이 없었다. 우리는 하나다. 그래서 내 이름이 ‘하나’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나 혼자라 ‘하나’인 것 같다. 엄마는 이제 날 부르지도 않고, 내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안아 주지도 않는다. 엄마가 여기 있는데, 만져지는데, 엄마가 없는 것 같다. 엄마는 스파이처럼 비밀스러워졌다.
단둘이 있으면 엄마는 새로 생긴 비밀을 말해 줄지도 모른다.
“하나야, 배 안 고파? 밥 주고 갈까?”
아줌마도 엄마처럼 나만 보면 밥 타령이다.
“배 안 고파요, 나중에 먹을래요.”
“하나야, 무슨 일 있으면 간호사 언니 불러. 아니면 아줌마한테 전화하든가.”
아줌마는 가방을 들고 일어서며 당부했다.
“걱정 하지 말고 내려가세요.”
아줌마가 가고, 나는 엄마와 단둘이 있게 됐다.
“엄마, 아줌마 갔어. 이제 나밖에 없어.”
엄마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어 냄새를 맡았다. 엄마만의 냄새가 났다. 엄마 냄새를 맡으니 엄마가 여기 있는 것을 믿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은 흘러 엄마와 단둘이 된 지 세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이 ‘물속에서 숨 참기’를 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10시가 되자 조용한 병원 복도에 간호사 언니의 발소리가 울렸다. 나는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갔다. 간호사 언니는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고 링거를 바꿔 달고 돌아갔다. 간호사 언니가 나를 보면 어른은 어디 계시냐고 물어 보겠지. 그럼 거짓말을 해야 한다. 사실대로 말하면 아줌마한테 연락을 할 거다. 그렇게 되면 나는 신용불량자가 될 거다. 양치기 소년처럼 아무도 내 말을 믿어 주지 않겠지.
화장실에서 나와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소파에 누웠다. 엄마 옆에서 자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잠버릇 고약한 내가 발차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밤이 되면 아토피가 심해진다. 몸이 더욱 가렵다. 긁으면 긁을수록 더 가려워졌다. 긁다가 긁다가 끝내 피가 났다. 피를 보니 왈칵 눈물이 났다. 울다가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새벽녘에 잠이 깨 문득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밖을 내려다보니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엄마, 첫눈이야!”
엄마는 눈을 참 좋아한다. 갑자기 엄마에게 눈사람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려면 옥상으로 가야 했다.
외투를 걸치고 병실을 나섰다. 간호사 언니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엘리베이터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마침 엘리베이터는 9층에 멈춰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문이 띵, 하고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인 15층을 눌렀다.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가 말했다.
“15층입니다!”
엘리베이터가 말했다.
문이 열리고 하나는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기대했던 깨끗한 눈은 없었다. 대신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색색의 꽃들이 만발한 꽃밭, 애국가에 나오는 소나무를 비롯한 나무들, 인삼, 고추, 배추들이 풍성하게 익어 가는 텃밭…….
그 곳은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파란 하늘로 떠오르고, 아침 이슬은 나뭇잎에서 꽃잎으로 또르르 굴러 내리고 있었다.
“내리십시오!”
엘리베이터가 속삭였다.
놀라서 장승처럼 굳어 있던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내가 내리자 엘리베이터 문은 스르르 닫혔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 따라 나뭇잎들이 춤을 췄다. 마치 나를 부르는 손짓 같았다.
꽃밭에 다가가자 바람이 실어 나른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이제야 알았다. 엄마가 말한 대로 간지러운 것하고 가려운 것은 다르다.
여기서는 나만 겨울이다. 나만 겨울 옷을 입고 있다. 땀이 등을 타고 흐른다. 외투를 벗어서 귤나무에 걸쳐 놓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귤나무 모양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아래 줄기부터 다리로, 팔로, 얼굴로 변했다. 급기야 귤나무는 어떤 아저씨로 변해 내 외투를 팔에 걸치고 서 있었다.
이상한 건 이 모든 상황이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거다. 나무가 환자복을 입은 아저씨로 변했는데 말이다. 오히려 아저씨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훑어봤다. 그러고는 몹시 진지한 얼굴로 팔을 휙휙 휘두르고, 우스꽝스럽게 제자리걸음을 했다.
“봐, 내 몸이 움직여. 넌 누구지? 날 어떻게 한 거야?”
지금, 그 질문은 내가 해야 한다. 사람으로 변한 나무에게. 아니, 나무였던 사람에게.
“전 이하나예요. 그리고 전 별로 한 게 없는데요.”
“이건 뭐지?”
아저씨는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외투를 살피며 다시 물었다.
“제 옷이에요. 그걸 귤나무에 걸었거든요.”
‘갑자기 나무가 아저씨로 변했어요.’ 라는 뒷말은 속으로 했다.
“이걸 나한테 걸었다고?”
아저씨가 외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아저씨는 자기가 나무라는 걸 아시는구나!
“아저씨는 나무 요정이에요?”
묻고 나니 웃기는 질문이다. 턱수염 수북하고 환자복 입은 요정이라니. 더구나 요정은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에 대답하는 존재가 요정이다.
아저씨는 내 외투를 들고 소나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외투를 소나무에 걸었다. 숨죽이며 지켜 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거 때문이 아닌가 보다.”
아저씨는 몹시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뭐가요?”
“마법의 외투가 아니라고.”
“풋. 아저씨,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럼,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거니? 내가 걷고 있잖아.”
아저씨는 과장된 몸짓으로 나에게 걸어오며 말했다.
“하나라고 했지? 하나는 식물인간이 뭔지 아니?”
“네. 엄마가 식물인간이에요. 어른들은 내가 모르는 줄 알지만.”
내 대답에 아저씨 표정이 굳어졌다.
“미안하다. 괜한 걸 물어 봤구나.”
“아뇨. 하지만 매일 잠만 자니까 겁나요.”
“그래. 엄마가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으니까 답답하지?”
“어떻게 아세요?”
“나도 식물인간이니까. 대한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란다.”
나는 너무 놀라 쓰러질 뻔했다. 식물인간, 귤나무, 대한병원이라는 단어들이 어지럽게 돌아다니며 머릿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다 퍼뜩 어떤 깨달음이 머릿속을 때렸다.
‘엄마도 여기에 있다.’
주위를 둘러봤다. 정원을 이루고 있는 식물들이 대한병원에 입원해 있는 식물인간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왜! 아저씨만 사람으로 변했을까? 나 때문인가? 내가 여기에 왔기 때문에? 아니다. 그렇다면 엄마가 사람으로 변해야 했다. 난 엄마 딸이고, 더구나 저 아저씨를 알지도 못한다.
그 때, 엘리베이터 문이 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러자 내 앞에서 아저씨가 다시 귤나무로 변해 버렸다.
“아저씨! 흑흑.”
가슴이 세게 부딪친 것처럼 아팠다. 나무가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보는 것은 서커스를 보는 것처럼 놀랍고도 신났다. 하지만 사람이 나무로 변하는 것을 보는 것은 악몽처럼 끔찍했다.
“어서 타십시오!”
엘리베이터가 말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계속 열려 있었다. 마치 누군가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는 것처럼.
“어서 타십시오!”
엘리베이터가 더 큰 소리로 다시 말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처럼 홀린 듯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내려갑니다!”
엘리베이터가 속삭였다.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9층에서 멈췄다.
“9층입니다!”
엘리베이터가 말했다.
문이 열리자 낯익은 9층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내릴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있었지만 엘리베이터는 아무 말도 없었다. 단지 소리 없이 문이 닫힐 뿐이었다. 열림 버튼을 누르던 나는 깜짝 놀랐다. 15층 버튼이 없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14층까지만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14층을 눌렀다.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가 말했다.
14층에 도착했다.
“14층입니다!”
엘리베이터가 말했다.
문이 열렸다. 9층과 별로 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다. 나는 내리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벽에 몸을 기댔다. 문이 다시 닫히자, 간신히 손을 뻗어 9층을 눌렀다.
병실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여전히 누워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하나! 어디 있었어? 아빠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아빠가 나를 보더니 소리쳤다.
세미나가 취소돼서 집에 돌아왔는데 내가 집에 없어서 너무 놀라고 무서웠다고 했다.
“왜?”
나는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아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아빠는 내 눈을 피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 달 전, 엄마의 생일날.
엄마, 아빠와 나, 우리 세 식구는 외식을 하기로 했다. 나와 엄마는 7시에 레스토랑에서 아빠를 만나기로 했다. 한의사인 아빠는 환자가 많이 밀려서 좀 늦어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빠네 한의원은 늘 환자가 줄을 섰다. 그 중에는 연예인도 많았다. 살을 빼기 위해 침을 맞고 한약을 먹었다. 아빠 한의원에 갔다가 실제로 연예인을 본 적도 있다. 실물은 날씬한데 텔레비전에서는 좀 통통해 보였다.
엄마와 나는 약속 시간 훨씬 전에 집에서 나왔다. 엄마는 파마를 해야 했고, 나는 오리 배를 타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마는 내 마음에 쏙 들게 나왔다. 하지만 엄마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리 배는 엄마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기로 했다. 우리는 구명조끼를 입고 오리 배에 올랐다. 열심히 폐달을 밟아 한적한 곳에 세운 뒤 둥실둥실 떠 있었다. 엄마가 눈을 감고 말했다.
“하나야, 눈 감아 봐. 바람이 볼을 간질인다.”
“가려운 건 싫어.”
나도 햇빛이 눈부셔 눈을 감았다.
“딸, 간지러운 거하고 가려운 건 달라.”
얼마 동안 그렇게 있었을까. 문득 간지러운 느낌에 눈을 떴다. 그건 바람이었다. 아빠의 바람.
우리 배와 쌍둥이처럼 닮은 오리 배 안에서 아빠가 뽀뽀를 하고 있었다. 다른 여자랑. 아빠는 약속 시간 한 시간 전,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는 내 옆에서 잠들어 있었다.
거센 바람이 오리 배를 흔들었다. 엄마가 뒤척이며 눈을 떴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엄마가 저 이상한 모습을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물로 뛰어들었다. 엄마가 나만 보기를 바랐다. 그런데 엄마는 물에 빠진 딸을 보고만 있진 않았다. 엄마가 물로 뛰어들기 위해 몸을 일으켰을 때 아빠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엄마는 그 소리에 뒤돌아보다 머리를 뱃머리에 부딪치고 물에 빠졌다.
나는 물개처럼 수영했고, 엄마는 풍선처럼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무서웠다.
“엄마!”
“하나야, 아빠 꼭 잡아.”
아빠도 어느새 물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아빠를 밀어 냈다.
“아빠 싫어, 미워! 엄마! 엄마!”
울부짖다가 나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물에서 나온 엄마는 식물처럼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물에서 나온 나는 아빠랑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줌마가 돌아왔다. 8층에서 9층으로.
“아줌마, 아저씨는 아직도 주무세요?”
“휴, 그래 쿨쿨 잘 자더라.”
아줌마는 옅은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아줌마 남편도 8층에서 자고 있다. 엄마처럼.
아저씨 간병인을 따로 두고, 아줌마는 우리 엄마 간병을 한다. 외할머니가 그러는 이유를 물어 봤다. 아줌마는 5년 동안 잠들어 있는 아저씨를 미워하게 될까 봐 그런다고 대답했다. 외할머니는 긴병에 효자, 효부 없는 법이라고 했다.
그 때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는 것은 힘들다. 그리고 야속하다.
아줌마는 엄마 얼굴을 씻기기 시작했다. 정원사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나는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학이 되었으니 병원에서 엄마랑 자겠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아빠에게 허락 받으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모른다. 아빠의 바람을.
아빠에게 전화해서 엄마와 함께 있겠다고 말했다. 아빠는 반대하지 못했다.
“아줌마, 이 병원 옥상에 가 본 적 있어요?”
“여기, 옥상도 있어?”
아줌마는 엄마 머리를 빗기며 대답했다.
“아줌마, 이 건물이 15층까지 있나요?”
“14층이야. 14층에서도 간병인 했었는데, 거기가 꼭대기 층이라 더워.”
분명 꿈은 아니었는데, 이상하다. 아줌마도 15층을 본 적이 없나 보다. 아줌마가 오기 전에 엘리베이터를 다시 탔었다. 역시나 15층 버튼은 없었다.
빨리 새벽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면 정원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벽까지 기다려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15층은 없었다. 이대로 다시는 정원으로 가지 못할까 봐 걱정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오는 새벽에 나는 정원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눈치챘다. 눈이 오는 새벽에만 정원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간 정원은 더 우거져 있었다. 전날, 9층에 새로운 환자들이 입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반가움에 엘리베이터 문 바로 앞에 있는 아름드리 떡갈나무를 꼭 껴안았다. 그러자 떡갈나무는 내 또래의 소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면서 나는 ‘내 외투 때문이 아니었어. 내가 나무를 만졌기 때문에 사람으로 변한 거야.’ 라고 생각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따뜻한 심장이 내 심장과 맞닿아 있었다. 부끄럽게도 소년과 나는 포옹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더 놀랐는지 모른다. 소년과 나는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넌 누구니? 그리고 여기는 어디야?”
소년은 볼을 붉히며 조용히 물었다. 하얀 얼굴의 모범생으로 보이는 아이였다.
“난 이하나라고 해. 여기는 네 정원이야.”
“난 아파트에 살았는데.”
소년은 주위를 살피며 대답했다.
“넌 이름이 뭐니?”
“난 정운이야.”
정운이는 교통사고를 당해 어제 입원했다고 했다. 귤나무 아저씨는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는데, 정운이는 잘 몰랐다. 아마도 아저씨가 오랫동안 이 곳에 있어서 그런가 보다. 내가 정원에 대해 설명해 주자 놀라워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정운이와 나는 거의 모든 식물들을 만졌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왜 나만 변한 거지?”
“모르겠어.”
“가만히 과거로 돌아가 보자. 처음 여기에 왔을 때 귤나무에 옷을 걸어 놨다고 했지?”
“응. 그러고 나서 귤나무가 아저씨로 변했어.”
“그리고 여기 와서 떡갈나무를 안았는데 나로 변했고.”
갑자기 그 두 번의 변화에 어떤 공통점이 떠올랐다.
“맞다. 정원에 와서 처음 만졌어. 귤나무랑 떡갈나무를.”
“그렇다면!”
정운이가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처음 만진 식물이 사람으로 변하는구나!”
우리는 합창하듯 동시에 소리쳤다.
정운이와 나는 서로의 가족 이야기와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정운이는 엄마가 잠만 자는 것 같지만 내가 말하는 걸 다 듣고 있다고 알려 줬다. 정운이도 다 듣고 있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너와 함께 돌아갔니?”
정운이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 때의 슬픔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니, 이상하게 사람으로 변했을 때처럼 갑자기 다시 나무로 변했어.”
“나도 다시 나무가 되겠네.”
정운이도 풀이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널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넌 엄마를 찾아야 하잖아.”
정운이가 억지로 씩씩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엄마가 어떤 식물로 변해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다시 정원에 올 때는 귤나무와 떡갈나무는 만지지 않을 것이다. 정운이도 그걸 아는 거다.
“병실로 널 만나러 갈게.”
“난 말하지 못하잖아.”
“내가 말할게. 대신 넌 들을 수 있잖아.”
그 때 엘리베이터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눈 앞에서 정운이가 떡갈나무로 변했다. “어서 타십시오!”
엘리베이터가 말했다.
나는 날마다 정원이를 찾아 갔다. 정원이는 8층에 있었다. 총명하게 반짝거리던 두 눈은 여전히 꼭 감겨 있었다. 정원이 엄마는 내가 병실에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잠든 정운이 엄마의 볼은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정운아, 나야.”
정운이 엄마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불렀다. 정운이 눈꺼풀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정운아, 오늘 새벽에도 눈이 왔어. 그래서 정원에 갔지. 배추를 처음 만졌어. 그런데 엄마가 아니었어. 시장에서 배추장사 했던 할머니래. 너는 왜 떡갈나무였을까? 다음에 정원에 가면 널 만질 거야. 그리고 떡갈나무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물어 봐야겠어. 그래야 엄마를 빨리 찾지. 참, 슬픈 소식이 있어. 귤나무가 없어졌어. 돌아……가셨을까?”
옆 병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정운이 엄마가 뒤척였다. 나는 조심조심 정운이 병실에서 나왔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막 뛰어서 옆 병실로 들어갔다. ‘환자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복도 저 끝에서 정원사 아줌마가 울면서 뛰어 오고 있었다. 코 앞의 나를 보지도 못하고 아줌마는 병실로 들어갔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따라 들어갔다.
의사들과 간호사들, 다른 병실의 정원사들까지 침대를 에워싸고 있었다.
“여보.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요?”
아줌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으응.”
신음소리로 대답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5년 만에 깨어나는 경우도 있네. 기적이네 기적이야.”
내 옆에 있던 아줌마가 다른 아줌마한테 말했다.
나는 놀라서 침대 속 기적을 확인하기 위해 의사선생님까지 밀어내고 끼어들었다. 기적을 확인하고 나니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줌마 남편은 그 아저씨였다. 귤나무 아저씨.
아저씨가 나를 봤다. 눈빛이 흔들렸다. 나를 알아본 것이 틀림없다. 아저씨의 시선을 따라가다 아줌마도 나를 봤다.
“하나야, 아줌마 남편이 깨어났어.”
아줌마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지 않았는데도 정말 예쁘고 행복해 보였다. 나는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하나야.”
아저씨는 이상한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우리의 재회는 뜨겁고 짧았다. 아저씨가 금세 피로해져서 모두 병실을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아저씨와 아줌마를 남겨 두고 병실을 나오면서 나는 깨달았다. 정원에서 귤나무가 사라지고 아저씨가 깨어났다는 중요한 사실을.
그리고 엄마가 미용실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나야, 봄이 오면 정원을 만들 거야. 그리고 정원 가득 장미를 심어야지.”
“엄마, 난 해바라기!”
“아빠는 엄마한테 장미꽃 백 송이를 주며 청혼했었어. 장미를 보면 아빠는 기억해 낼 거야. 그 때의 사랑을…….”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는 아빠의 바람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엄마는 장미꽃을 심을 거라고 말했다.
겨울은 이제 시작이다. 눈은 앞으로도 많이 오겠지. 그리고 나는 정원으로 가 장미꽃에 입을 맞추고 엄마를 만날 것이다.
김 화 순
1973년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우송대학교에서 국제통상학을 공부했다. 현재 ‘어린이책작가교실'에서 동화를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