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소금향기 그리운 그곳, 완도 -박월선

한우리독서토론논술 2008. 11. 13. 19:09

소금향기 그리운 그곳, 완도
내 고향 바다는 우리가족이 하나되게 하는 공간
[80호] 2007년 02월 02일 (금) 10:23:23 박월선 동화작가 dongponews.net
   
 
  ▲ 날씨가 따뜻한 완도에는 죽청리일대를 비롯한 동백꽃 군락지가 많다.  
 
며칠 전 중학교 단짝 친구 송별회가 있었다. 자녀 교육 문제로 고민하던 친구는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캐나다로 유학을 보냈고, 1년 후 딸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언제라도 볼 수 있다는 핑계로 그간 미루기만 하느라 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다. 캐나다로 간다는 소식에 서둘러 서울로 가 만난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모여 살던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고향의 시골중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남이었다. 그것도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지 않았던 나에게 친구들은 낯선 존재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들과 한 탁자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는 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 기분에 더욱 놀랐고, 또한 신기했다. 23년의 빈 시간을 초월한 고향친구! 그 힘은 막강했다.

아, 고향이란 이런 것이구나. 처음 느껴 본 감정이었다. 같은 고향, 같은 중학교 동창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았던 23년의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니. 타임머신을 타고 중학교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나는 방문을 열면 수평선이 보이는 집에서 살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어서야 바다가 보이는 그 집을 떠나게 되었다. 부모와 헤어져 산다는 것 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파도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광주로 가서도 나는 밤마다 파도 소리를 그리워 잠 못 이룬 적이 많았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바다를 보러 고향으로 달려갔다. 버스 차창 밖으로 바다가 보이면 그 동안 도시 건물로 꽉 막힌 내 가슴이 펑 뚫렸다.

교육열 높은 아버지 덕에 도시로 흩어져 살던 가족들은 주말에 바닷가에 모였다. 바다는 우리 가족을 연결시키는 공간이었다. 바닷가 집에 모이면 작은 오빠가 낚시로 물고기를 잡고, 큰오빠는 하모니카로 노래를 들려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는 덤으로 퉁소를 꺼내 아리랑을 들려주곤 했다. 바다와 노래는 하나가 되었고, 우리 가족도 흩어졌던 마음이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

   
 
  ▲ 이제 완도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 섬과 물을 잇는 완도대교의 모습  
 
완도는 장보고와 청해진의 역사와 함께 유명한 섬이다. 또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윤선도의 유배지인 보길도, 청산도와 소안도, 노화도를 비롯한 풍광이 빼어난 섬들이 바다낚시터로 명성을 날리기도 한다. 나아가 김과 미역의 주산지로서 기억되고 있기도 하다. 경관이 빼어난 크고 작은 섬들이 산재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러한 섬, 내 고향 완도는 그러나 내게 있어 기다림의 공간이었다.

섬마을 학교에서 근무하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아버지 사랑에 목말라하던 공간이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다 집채만 한 너럭바위에 잠들기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기다림의 바다가 있는 완도는 항상 내 가슴 안에 따뜻하게 살아있다.

청해진 붕괴 이후 고려시대까지 주민들이 강제 이주돼 빈 섬으로 남아있던 완도는 조선시대에서야 가리포진을 설치하면서 다시 ‘사람이 사는 섬’이 됐다. 지금은 명승이 많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내 고향 완도, 그 중에서도 정도리 구개등은 단연 으뜸이다. 갯돌들이 아홉 계단을 이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이곳은 수 만 년 전에 걸쳐 형성된 갯돌과 독특한 방풍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이곳을 1972년에는 명승 제 3호로 지정하고, 이어 다시 1981년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인마을’ 등 주변 민박집을 특색 있게 개조해 탐방객들에게 편리하고 넉넉한 공간을 만들어놓고 있다.

장보고의 일대기를 그린 사극 ‘해신’은 드라마의 60% 이상을 완도에서 촬영했다. 완도읍 소세포 오픈세트장 ‘청해진포구마을’은 1만6천여 평 부지에 선착장, 선박(중·대형 12척), 객관, 저잣거리, 군영 막사, 망루 등 42동의 건물이 완공돼 있다. 이곳은 군외면 불목리 일대에 국내 최고 오픈세트장으로서 조성된 ‘신라촌’과 함께 관광 완도의 새로운 볼거리로 태어난 셈이다. 사계절 사람들이 넘치는 완도, 소금향기 가득한 내 고향의 바다가 모두의 마음속에 오래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