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힘 2050]
'유하 조선족 소학교' 책보내기 운동
교회·독서모임·도서연구회·출판사, 동화책·국어사전 적극 후원
작성 : 2008-10-08 오후 6:53:05 / 수정 : 2008-10-08 오후 10:27:07
김은자(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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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문자는.
1998∼2002년까지 유네스코가 실시한 언어 2900여종 중에서 우수한 문자로 평가를 받은 것은.
바로 한글이다.
한글날인 오늘도 거리에 즐비한 간판엔 외래어 일색이다. 사람들은 외래어는 세련돼 보이고 한글은 촌스러워 보인다고 말한다. 언론매체의 광고에도 예외는 없다.
하지만 소중함을 쉽게 잊고 있는 한글과 우리말을 지키고자 애쓰며 분투하는 사람들도 있다.
멀리 압록강 너머 중국 길림성 유하현에 있는 조선족 소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이 그들이다. 중국 동포들에게 한글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지켜 나갈 수 있는 힘이다. 2000년 이상 나라 없이 떠돌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그들의 언어였듯 말이다.
일제 강점기 압록강 너머 서간도라 불리던 지역에는 유하현은 신민회 창립 주역인 이회영과 그의 형제들이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다. 이들은 석주 이상룡과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세워서 만주지역에서 민족운동과 함께 수천 명의 독립군을 양성해 냈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한인 50호 이상 거주하는 지역마다 소학교를 세웠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유하현에 30여개의 조선족 소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 한 곳만 남아 있다.
유하 조선족 소학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한글 교육이다. 조선족들조차 중국어를 하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버린 지금 한글 교육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김재근 소망침례교회 목사는(41· 전주시 인후동) 그곳 소학교에 '어린이 책 보내기' 사업을 계획하고 지인들과 몇몇 독서 모임에 이 소식을 알렸다.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동화책을 기증하는 사람, 우송료를 후원하는 사람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금암시립도서관 독서모임 담쟁이, 어린이도서연구회 전주지회도 후원에 동참하고 있다. 도서출판 보리는 조선족 학교에 국어사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용숙 교장(50·여)은 "중국 연변에서 출판한 국어 교과서 한권만으로 수업을 해야 하는 형편인데 한국에서 보낸 책들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이들이 아주 좋아한다. 또 지금까지는 북한에서 출간한 오래된 국어사전만 있어서 불편했는데 남한 말과 북의 말이 함께 있는 국어사전을 보내줘서 특히 교사들이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곳 학생들은 생활하면서 주로 중국어를 사용하고 수업 시간에만 한글과 우리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글 실력이 매우 좋지 않으면, 3·4학년이 되서야 읽기를 배우기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말을 들을 기회도 적고 한글을 읽을 기회도 거의 없는 아이들에게 동화책과 그림책 그리고 국어사전은 매우 좋은 선물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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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장은 책을 선물한 한국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 여러 번 오기도 했다. 그러나 선물을 주고 사진만 찍어 가는 일회성 행사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는 도움을 주겠다고 왔다가 학교에 피해를 입히고 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실질적으로 교육에 필요한 도움을 준 사람들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한글 교육은 조선족 사회를 유지하고 우리 역사를 지켜나가는데 꼭 필요하다는 것. 그런데 아이들을 위한 우리말 책을 전혀 구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어서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에 한국에서 보내준 책들은 우리 학교 교육과 아이들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게 쓰일 것"이라며 "관심을 가져주시고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비교적 윤택한 환경에서 지원받는 한족학교로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지금 조선족 학교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든 우리말을 가르치면서 학교를 살려보고자 눈물겨운 노력을 해나가고 있다. 100년 전 서간도를 흔들었던 항일 투쟁의 기개가 아직도 살아있는 듯하다.
/김은자(여성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