쳐다보지만 말고 소주 한 병 더 달라고 해!” 학교에서 돌아온 현우는 낮부터 취해 있는 할아버지를 보자 짜증부터 났다.
할아버지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고는 아빠 욕을 했다.
그 대표적인 욕이 ‘얼어 죽을 놈’이었다.
할아버지는 일단 술이 입안으로 들어갔다 싶으면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중얼중얼,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욕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끝에 가서는 한결같이 아빠에게 ‘얼어 죽어도 시원찮을 놈’이라는 욕을 했다.
아빠에게 잘못이 있기는 하다.
하필이면 왜 ‘얼어 죽을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만 한 병 더 달라고 해.” 할아버지는 소주병을 던질 기세로 거칠게 흔들었다.
현우는 책가방을 어깨에 멘 채 취해 있는 할아버지를 곁눈질하며 대문 밖으로 나왔다.
“선주가 돈 주는 대로 갚는다고 하란 말이다.” 할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대문 밖까지 쫓아왔다.
“배만 있어도 니 놈이랑 나랑 굶어 죽지는…….” 또 그 넋두리 시작이다.
할아버지 말에 의하면 배는 할아버지 목숨보다 귀한 거라고 했다.
현우는 선창가에, 한 곳밖에 없는 수퍼로 갔다.
어제 수퍼 할머니는 더 이상은 외상 술을 줄 수가 없다고 했다.
수퍼 앞에서 망설였다.
수퍼 할머니는 파리채를 든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부웅, 뱃고동 소리가 들리자 할머니가 눈을 번쩍 떴다.
현우는 할머니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얼른 수퍼 담 벽으로 바짝 붙어 섰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가슴이 쿵쿵 뛰었다.
수퍼 담벽에 붙어 배에서 내리는 마을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현우는 곧 데리러 오겠다던 아빠의 얼굴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현우는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멀리 사라져 가는 여객선의 꽁무니만 바라보았다.
여객선은 현우가 사는 섬마을에 하루 두 번 뱃머리를 대었다 떠나버린다.
방파제에서 바싹 말라 푸석푸석해진 불가사리를 바다 속으로 집어던졌다.
불가사리가 두 쪽으로 나누어져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현우는 방파제 끝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대롱거렸다.
멀리 고깃배 한 척이 지나가자 파도가 일렁거렸다.
커다란 파도산이 방파제에 부딪혀 부서졌다.
현우 다리에도 바닷물이 튀어 올랐다.
현우는 날이 어둑어둑해져서야 집으로 갔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벽에 붙어 슬며시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마루에 넘어진 소주병만 보이고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집안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봐도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안 보이니까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현우는 가방을 벗고 마루를 치웠다.
소주병은 포대에 담았다.
멸치볶음과 김을 냉장고에서 꺼내 밥을 먹었다.
설거지를 하고 벗어 둔 가방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흘 후, 11월 12일은 가을 학예발표회 날이다.
선생님은 학생들 모두 장기자랑을 꼭 한가지씩은 해야한다고 했다.
현우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빠 손에 끌려오면서도 현우는 오카리나를 챙겼다.
오카리나를 불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카리나로 ‘섬집아기’를 부르기로 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현우는 오카리나를 불다 말고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눈꼬리에 눈물이 고였다.
엄마가 이대로는 살 수가 없다면서 아빠에게 소리치고 울었다.
아빠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면서 방문을 쾅 닫았다.
현우는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들었다.
돈 벌면 데리러 오겠다던 엄마…….
방안이 캄캄했다.
방문을 열어 젖혔다.
마당도 캄캄했고, 할아버지 방도 캄캄했다.
현우는 마루 밑에 놓인 신발을 찾아 신고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밖으로 나왔다.
선창가 쪽으로만 가로등에 불이 켜져 있었다.
현우는 할아버지가 그물을 손질해 주는 선주네 막사 쪽으로 가려고 걸음을 옮겼다.
낯익은 고함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가 아빠를 욕하는 소리였다.
현우는 후다닥 방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얼어 죽을 놈! 내 배, 내 배 도로 찾아다 놓으란 말이다!” 수없이 들은 배 이야기다.
작년 겨울부터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다.
은행에서 대출받아 가구점을 확장했는데 갑자기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진 것이다.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가구할인 백화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침내 아빠 가구점은 문을 닫고 말았다.
초여름이었다.
아빠와 심하게 다툰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은 가게가 문을 닫고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현우는 아빠 손에 이끌려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섬으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은행에서 나온 사람들이 할아버지 배를 끌고 가버린 것이다.
아빠의 은행 대출금 때문이라면서.
할아버지가 배만은 안 된다고 낯선 사람들을 붙들고 사정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날부터 할아버지는 하루도 빼지 않고 술을 마셨고, 아빠를 욕했다.
‘이 얼어 죽을 놈’이라고.
학예발표회 날이 되었다.
현우는 오카리나로 ‘섬집아기’를 불렀다.
친구들도, 마을사람들도 모두 정말 잘했다고 손뼉을 쳐주고 등을 두들겨주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현우는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에게 듣고 학교로 올 줄 알았다.
현우는 마을 사람들이 정말 잘한다고 부러워하는데도 눈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작은 방은 청소를 해도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구실로 할아버지 방에서 같이 자자고 했을 때는 언제고.
니 놈처럼 클 때는 생선을 많이 먹어야 된다며 생선뼈를 발라줄 때는 언제고.
현우는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이 보지 않게 눈을 꼬옥, 감아 눈물방울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현우는 할아버지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선창으로 갔다.
배가 닿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나무다리가 바람이 불 때마다 심하게 몸부림을 쳤다.
아빠랑 엄마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우는 섬에서 나가고 싶었다.
술 취한 할아버지가 싫고, 아빠 욕을 하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지 않았다.
현우는 아빠 때문에 할아버지가 자기도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배를 타려는 마을 사람들이 수퍼 앞쪽에 몰려있다 부두로 나왔다.
현우는 매표소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마을 사람들이 순순히 현우를 배에 태우지는 않을 것이다.
배에서 마을 사람들 몇이 내리고, 오토바이 한 대가 빠져나오자 부두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배에 몸을 실었다.
마침 농협 출장소에 왔다 가는 트럭이 한 대 부두로 왔다.
현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슬며시 트럭 뒤에 붙어 섰다.
검은 잠바를 입은 아저씨가 트럭 옆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현우는 트럭 뒤에 붙어 서서 따라 들어가다 검은 잠바를 입은 아저씨 맞은 편 쪽으로 몸을 붙였다.
트럭의 시동이 꺼지고 트럭 문이 열렸다.
현우는 몸을 낮추어 트럭 바퀴 옆에 쭈그려 앉았다.
부웅,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배 안에 있는 방안으로 들어가고 몇 사람만이 난간에 기대어 바다 끝,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우는 사람들 눈을 피해 트럭 뒤쪽으로 거북이처럼 기어갔다.
트럭 뒤쪽에 기대앉아 점처럼 조그마해지는 섬을 바라보았다.
현우는 할아버지가 없어진 자신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머리를 흔들어 버렸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현우는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에 가 볼 생각이었다.
멀리 다리가 보이고 다리 위로 달리는 버스도 보였다.
현우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파트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를 하던 친구들 얼굴이 떠올랐다.
섬에는 현우와 같은 4학년에 여자아이 둘밖에 없었다.
터미널로 가서 버스만 타면 되는데…….
사람들 발소리가 들렸다.
배가 다리를 지나 여객선 터미널 쪽으로 뱃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현우는 배 한쪽에 있는 화장실 옆쪽에 서 있다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 틈에 섞였다.
사람들 걸음에 밀려 현우도 자연스럽게 썰물처럼 배 밖으로 밀려나가려던 참이었다.
머리카락이 하얀 아저씨가 현우 곁에 선 아저씨의 손을 잡으며 장 보러 나오는 길이냐고 반가워하면서 현우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넌, 김영감님 댁 손자 아니냐?” 머리카락이 하얀 아저씨는 현우네 섬마을 사람이었다.
현우는 도망을 치고 싶었지만, 주위를 빙 둘러 어른들이 촘촘히 서 있었다.
“어떻게 배 안으로 숨어들어 왔대요.
맹랑한 놈이네.
지 부모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할아버지가 날마다 술에 취해 사니, 나라도 원 참…….” 현우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할 것 없이 한마디씩 했다.
“여객선은 끊겼고 동진호를 불러야지 뭐.
그 영감 난리가 났을 텐데.
술 마시고 말은 고약하게 해도 손자만은 끔찍하게 아끼던데…… 예끼 이 철없는 놈아!” 현우는 마을 사람들이 할아버지만 생각하는 것 같아 미웠다.
‘내가 어딜 가든지 말든지 상관 마세요.
엄마랑 아빠도 나를 버렸는데 뭐.’ 현우는 속으로 소리쳤다.
차마 마을 어른들에게 대꾸는 못 하고 눈물방울만 떨구었다.
현우는 마을 어른들이 비상용으로 쓰는 동진호를 타고 다시 섬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마을 어른들이 할아버지에게 미리 전화를 했는지 할아버지는 선창 매표소 앞에서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동진호가 부두에 닿기가 바쁘게 할아버지는 현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니 애비가 나 속을 썩히는 것도 부족해서 니까지 나 속을 썩히냐? 그래 어디 니가 갈 데는 있드냐?” 할아버지는 다시는 현우의 손을 놓지 않겠다는 듯이 꽉 그러잡았다.
“니 놈이 만에 하나라도 어떻게 되면 나가 니 애비를 어찌 봐.
그래도 부모라고 닐 나한테 �기놨는디.
어디라고 니 혼자 뭍으로 가.
배도 안 고프냐.
종일 싸돌아 다니게.” 말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 입에서 소주냄새가 풍겨 나왔지만 현우는 할아버지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할아버지 눈 주위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다음날,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현우는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려도 할아버지가 오지 않자 찾아 나섰다.
주네 막사엘 가 봐도 불이 꺼져 캄캄하고, 따로 그물을 손질하는 자갈밭 해수욕장에도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현우는 덜컥 겁이 났다.
혹시…….
할아버지마저 없으면…….
현우는 할아버지 배가 묶여있던 마을 뒤쪽 선창으로 달렸다.
배는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태풍이 불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배들이 마을 뒤쪽 선창에 정박했다.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만 아는 뒤쪽 선창에 배를 정박해 두었는데도, 은행에서 나온 사람들은 쉽게 할아버지 배를 찾아내서 끌고 가버렸다.
술에 취한 할아버지를 마을 뒤쪽 선창에서 찾아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없다, 할아버지가 사라져버렸다.
현우는 목청껏 할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현우는 마을 뒤쪽 산언덕까지 달려 올라갔다.
산언덕을 돌아가면 바위가 많은 곳이 나왔다.
바위들 아래는 바로 바다였다.
아빠가 현우만 홀로 섬에 남겨 두고 떠나버리던 날, 현우는 무작정 산으로 달려 올라갔다.
배를 타야만 섬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현우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섬에서 제일 먼 곳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달리다, 달리다 더 이상 달릴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멈춰선 곳이 바위벼랑이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 때였다.
사람소리가 들렸다.
발음이 또렷하지 않은 술 취한 사람 소리였다.
“태식아, 태식이 이놈아, 이 얼어 죽을 놈아, 이 못난 놈아, 지 새끼 건사도 못하는 건 니랑 나랑 똑같다 이놈아.” 현우는 아빠의 이름이 들리자 멈춰 섰다.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바위를 붙잡고 바다를 향해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불쌍한 놈, 못난 애비 만나서.” 할아버지는 현우에게 하는 말인지, 현우 아빠에게 하는 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말을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했다.
“나가 니 애비를 어떻게 키웠는데…… 엄동설한에 얼까봐, 오뉴월에 더위먹을까봐, 나가 지 놈을 어떻게 키웠는데…….
내 새끼!” 할아버지는 현우를 안으려는 듯 두 팔을 벌렸다.
“할아버지 추워요.
어서 집에 가요.” 할아버지는 현우의 두 팔을 꽉 그러잡고 흔들었다.
할아버지는 ‘내 새끼’라는 말을 몇 번 반복했다.
현우는 할아버지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할아버지 입에서 달콤 쌉싸름한 소주냄새가 풍겼다.
산을 돌아 마을 뒤쪽 선창이 내려다보이는 마을 길로 들어섰다.
“할아버지! 제가 크면 할아버지 배 다시 찾아 드릴게요.
아빠를 얼어 죽을 놈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몸을 흔들흔들 숨을 몰아쉬던 할아버지가 멈춰 서서 현우를 내려다보았다.
“그 말이 귀에 거슬리더냐? 이제 곧 엄동설한인데 어디 가서 뭘 하든 얼어 죽지는 말라고 그랬다 이 녀석아.
그래야 다시 널 데리러 올 게 아니냐.
섬사람들은 하늘이 무서워 말을 반대로 한다 이 녀석아.” 현우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할아버지의 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많이 춥냐? 업어주랴.
업혀봐라.
니 애비도 많이 업어줬다.” 할아버지는 땅에 쭈그려 앉아 현우에게 어서 입히라는 듯 두 팔을 옆으로 쫙 벌렸다.
현우는 못 이기는 척 할아버지 등에 입혔다.
할아버지의 마른 등은 푹신하지는 않았지만 따뜻했다.
할아버지는 현우를 업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이놈 봐라.
보기보다 꽤 무겁네.
너 소라껍데기 잘 불드라” 할아버지가 발걸음을 옮기려하자 현우는 할아버지 등에서 쭉 미끄러져 내려왔다.
“할아버지.
소라껍데기가 아니라 오,카,리,나, 이에요.
근데 할아버지 어떻게 아셨어요?” “운동장 동백나무 울타리 옆에서 들었다.
니 놈은 날 못 봤지?” 현우는 할아버지 겨드랑이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할아버지가 숨을 쉴 때마다 풍기는 소주 냄새가 현우에게 달콤하게 느껴졌다.
마을 안쪽을 비추는 가로등이 유난히 밝다.
/김순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