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아동문학
바다로 간 시계
한우리독서토론논술
2008. 2. 1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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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잘 할 수 있다. 조금만 더 힘내!”처음 배운 핸드폰 문자로 답장을 보내 용기를 전해 주신 따뜻한 마음 감사합니다. 한 때는 제 기분에 취해 거만하게 방방 뜨고 있을 때 날카로운 비평으로 정신을 확 깨게 만들어 주신 배봉기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어느새 동화를 읽고 쓰는 일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내면과의 대화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 안에 있지만 모른 척,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거부하고 살았습니다. 동화를 통해 내면 속의 나를 만나고 사랑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동화를 읽고 쓰는 일은 삶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법을 지녔나 봅니다. 동화의 끈을 놓지 않게 연결시켜주신 전북아동문학회 회원, 광주대학교 동화 모임 회원들과 이 기쁨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동화는 늘 좋은 것, 좋은 생각만 해야 좋은 동화가 탄생 한다”며 배려해 주신 이호산씨!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동화 모임 때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도 불평 없이 씩씩한 민규, 민욱이 사랑한다. 부족한 저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 준 ‘광주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불씨가 정말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월선 ▲1969년 완도 출생 ▲광주대 문예창작과 졸 ▲전북아동문학회 사무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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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인이라면 당당히 낡은 소재, 낡은 기법을 떨치고 새로운 언어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예심을 거쳐 선자의 손에 들어온 작품들은 기본적인 소양을 지니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신선도가 떨어지는 아쉬움을 지니고 있었다. 패기와 실험정신을 최우선 심사기준으로 하여 눈여겨 본 작품은 10편이다. ‘짱구탈출기’는 아빠의 사업실패에 따른 어두운 음영을 깔고 있으며 대립하는 인물과 화해해 가는 심리적 과정을 그렸으나 군데군데 주제가 노출되는 결함이 발견되었다. ‘말 하는 책받침’은 매직적 환상 기법으로 속도감있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으나 소품에 그친 아쉬움을 남겼다. ‘아기별꽃’은 시적인 문체가 돋보였으나 다소 신선도가 약했다. ‘핸드폰이 필요해’는 오늘의 아이들의 욕망을 암시하고 있으나 결말이 드러나 보이는 아쉬움을 보였다. ‘눈사람과 한밤중에’는 간결체의 묘미와 튼튼한 구성을 갖추고 있음에도 새로움이란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아쉬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바다로 간 시계’는 구성과 문장력이 비교적 안정돼 있고 현대인의 불안심리를 다룬 점에서 우선 개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결합력이 다소 떨어지는 문장이 더러 발견되었지만 시계라는 상징물을 내세워 강박관념을 무리없이 다룬 점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당선을 축하하며 보다 탄력을 얻어 성숙한 작가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전남대 교육대학원 국어과 졸 ▲광주일보 및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동화 당선 ▲아동문예문학상 평론 당선 ▲제13회 한국아동문학상 수상 ▲광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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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문을 살짝 열고 거실을 내다보았다. 엄마가 아빠 얼굴을 닦던 물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그 사이 나는 거실로 나왔다. 아빠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깔끔하게 다림질한 아빠 양복은 꾸깃꾸깃해져 있고, 음식을 토한 흔적까지 있었다. 아빠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노란 서류봉투가 아빠 곁에 놓여 있었다. 나는 봉투를 열어 서류를 빼냈다. 종이에는 각 지점 이름이 쓰여 있고, 길고 짧은 막대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다. 아빠가 근무하는 상무지점 위의 막대그래프가 가장 낮았다. 아빠 얼굴을 들여다보니, 식은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내 잠옷 소매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벌려진 아빠의 손가락 끝이 꼼지락거렸다. 가만히 아빠 손을 잡았다. 순간, 아빠가 내 손을 꽉 움켜잡았다. 잡고 있던 것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처럼. 잠시 후, 아빠의 손에서는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그날 후로도 아빠는 술에 취해 오는 날이 많았다. 건전지가 닳은 시계 초침처럼 아빠는 느리게 변해갔다. 가끔씩 ‘훅’ 한숨을 쉬기도 하고, 깊은 생각에 취해 있는 것처럼 멍한 표정이었다. “여보, 부르는 소리 안 들려요?” “응? 응∼ 왜?” 어떤 날은 엄마가 불러도 건성으로 대답했다. “기계처럼 일만 열심히 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어.” 아빠는 혼자서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고는 소파에 앉은 채 낮은 막대그래프처럼 잠깐씩 졸곤 하였다. 아빠가 걱정스러웠다. 점점 불안해졌다. 날마다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에 뒤진다고 말하던 아빠였다. 그런데 아예 시계도, 신문도 보지 않았다. 진짜로 아빠의 몸시계가 수명을 다 한 것처럼 보였다. 다른 날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화장실을 가는데,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컴퓨터 안에서 막대그래프를 보는 것이 괴로워. 지난 밤엔 아예 내 책상이 없어져버린 꿈까지 꿨다니까.” 아빠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엄마의 한숨소리도 들렸다. 순간, 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방으로 들어왔는데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도 아빠와 같은 심정일 때가 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선생님이 성적표를 정리하는 날이었다. 청소 당번을 함께 하던 수진이가 책상 위에 있던 우리반 성적표를 보았다. 수진이는 왕방울만한 눈을 더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그 눈빛에 눌려 움찔했다. 교내 학예 행사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나를 못마땅해 하던 수진이가 내 수학 성적에 실망한 눈치였다. 수진이가 비아냥거렸다. “글쓰기만 잘하면 다냐?” 무시하는 것 같은 그 눈빛이 싫었다. 괜스레 주눅이 들었다. 그날, 축 처진 어깨로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시험 결과 나왔다면서? 수진이에게 들었다.” “…….” “너는 오학년이 돼서도 수학성적이 그 모양이니? 수진이는 하나 틀렸다는데. 왜 너는…….” 엄마의 원망에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어둠 뿐이었다. 잠깐 정지 버튼을 누른 듯 엄마 목소리가 멈추더니 다시 들렸다. “수학 과외를 하자!” 혼자서 방안을 서성이던 엄마는 곧바로 몇몇 친구들 집에 전화를 했다. 한참 심각하게 통화를 하더니 수학과외 모둠을 만들고, 과외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순간, 내 모습이 점점 작아지더니 마법에 걸린 난쟁이가 되고 말았다. 중간고사 후부터 나는 수학 과외를 시작했다. 날마다 시계를 봐가며 학원으로 왔다 갔다 했다. 학원을 다섯 군데나 다니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정해진 순서에 맞춰 ‘째각째각’ 시계처럼 움직였다. 나는 영락없이 움직이는 시계였다.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학원으로 항상 빙빙 돌기만 했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새처럼 자유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무엇이든 빨리 끝내고 싶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엄마가 말했다. “빨리 가거라!” 내 몸 속 시계는 엄마의 조정을 받으며 움직였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계속되는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시계는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 알지?”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학원을 열심히 다니면 엄마 말처럼 잘 되는 것인지. 그리고 잘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엄마의 간절한 얼굴을 볼 때면 정말 열심히 해서 좋은 점수를 받고 싶다. 하지만 성적은 길쭉한 막대그래프처럼 쑥쑥 오르지 않았다. 요즈음 아빠는 앉기만 하면 졸았다. 꼭 햇살 아래서 졸고 있는 병아리처럼 자꾸 졸기만 했다. 그런데 나도 자꾸 졸음이 왔다. 집에서도 학원에서도.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은 축 처진 내 어깨를 감싸주었고, 행복감에 젖어들게 했다. 졸음은 가끔씩 내 시계를 멈추게 했다. 일요일이었다. 아빠랑 나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함께 졸았다. “혼자 보기에는 아까워. 어떻게 부녀가 병든 닭처럼, 다정하게 머리를 마주하고 졸고 있을까?”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우리는 화들짝 놀랐다. 아빠와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중간고사 성적이 그 모양인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요!” 궁지에 몰린 나를 구하기 위해 아빠가 나섰다. “진향아, 우리 바람 쐬러 잠깐 나갔다오자.” 나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아빠를 따라나섰다. 엄마는 찌그러진 얼굴로 우리를 째려보고 있었다. 상관하지 않고, 아빠는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가져왔다. “아빠, 공원으로 산책 가는 거 아냐?” “일단 타 봐.” 아빠는 은밀한 계획이라도 미리 세워놓은 것처럼 차를 몰았다. “저녁까지는 올 수 있을거야. 어디, 지금 몇 시나 됐지?” 손목시계를 들어 바라보며 아빠가 말했다. “아빠, 그 시계 지금도 차고 있어요?” “회사에서 입사 기념으로 준 선물이다. 그래도 15년이란 세월을 나랑 함께 했는데 매정하게 버릴 수 없잖니.” 차는 벌써 변산반도를 들어서고 있었다. 초록으로 물든 나무들이 차창 밖에서 달리고, 불쑥 얼굴을 내밀던 산이 한 순간에 뒤로 물러났다. 넓은 들판이 작은 바둑판으로 다가왔다가는 사라졌다. 조금 열린 창문 틈으로 바람이 신나게 들락거렸다. “바다가 보인다!” 내가 창문을 열며 소리쳤다. 달리던 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아빠도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한꺼번에 ‘쏴’ 밀려왔다. 아빠가 손가락빗을 만들어 흘러내린 머리를 빗어 올렸다. 모항포구에 도착했다. 솔숲 아래는 모래언덕이 있고, 언덕길을 따라가면 갯보리사초가 작은 이삭을 흔들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도가 칠 때마다 모래가 거품을 일으키며 밀려왔다 밀려갔다. “야호!” 나는 소리를 질렀다. 순간,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바람을 타고 짭짜름한 소금향기가 코끝으로 밀려들었다. 그동안 가슴 가득 들어찬 내 수학성적 스트레스가 확 달아나버리는 느낌이었다. 아빠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아빠는 멍한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짙은 바다그늘이 내려와 아빠의 등 뒤에 앉았다. 파도는 장난이라도 치려는 듯 아빠가 서 있는 발 아래로 밀려들며 자꾸 까불어댔다. 아빠의 그림자가 물결 따라 파도 속으로 구부러졌다. 바위 곁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한참을 그러고 서 있던 아빠가 갯바위에 앉아 낚시질을 하고 있는 아저씨 곁으로 다가갔다. “많이 잡았습니까?” 아빠가 아저씨에게 물었다. “고기가 아니라 시간을 낚는 중이오.” 빨간 모자를 눌러쓴 아저씨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저씨가 던지는 낚싯줄이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획!’ 날아가던 낚싯줄이 파도를 타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아저씨는 점 같은 작은 찌를 바라보며 움직일 줄 몰랐다. 답답해진 아빠와 나는 곧바로 바위를 지나왔다. “시간을 잡는다고?” 아저씨의 말이 웃겼을까? 뒤를 돌아보던 아빠가 혼자 중얼거렸다. 아빠가 불쑥 손목을 올리더니 시계를 봤다. 한 발자국을 움직이고는 또다시 시계를 봤다. 그러던 아빠가 잠시 넋을 놓고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아빠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다. 얼굴 표정이 점점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빠 지금 몇 시야?” 순간,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엄마 얼굴이 떠올라 시각을 물었다. “글쎄!” 나를 바라보며 아빠가 아리송한 대답을 했다. 그 때였다. 아빠가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바다에 ‘획’ 던졌다. 시계는 점 하나 살짝 그리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아빠, 왜 시계를 버려?” 파도소리 때문에 아빠는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갑자기 벌어진 아빠의 행동에 나는 놀랐다. 하지만 더 이상 아빠의 생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 집에 가면 우리 새 시계 하나씩 사요.” 나는 아빠가 알아듣든 말든 넓적한 갯바위에서 파도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치 음악이 흐르고 있는 듯이 몸을 흔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몸을 흔들고 있을 때 내 등 뒤로 빨간 노을빛이 몰려왔다. 파도 소리는 점점 편안해졌다. 이렇게 편안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래. 이제 멜로디 시계를 사야겠구나! 허허허.” “하하하.” 아빠와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소리는 수평선을 향해 멀리멀리 날아갔다. 환하게 웃는 아빠 얼굴을 바라봤다. 오래전에 나를 무동 태우며 콧노래를 부르던 아빠 얼굴이었다. “아빠, 바다 냄새가 정말 좋아.”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아빠에게 말했다. 멀리서 배 한 척이 들어왔다.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 빙빙 날았다. 푸른 파도도 즐겁다는 듯 맑은 햇살을 몰고 따라왔다. 햇살이 아빠와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눈이 부셨다. “아빠, 몇 시나 됐어요?” “시계가 없잖아.” 정말 시계는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기 전에 아빠와 나는 집에 도착해야 한다. 아빠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속력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