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아동문학

1982년 조선일보 문예

한우리독서토론논술 2009. 10. 30. 10:38

엿장수

 

                  박정숙

 

철거덩 철거덩

판자동네 골목에

해가 녹아 흐르는 한낮

엿장수 가위 소리에

하늘이 금이 가고

끈적끈적한 엿판에 붙어

골목을 누비는 엿장수는

하루의 긴긴 해를 자르고 있다.

 

철거덩 철거덩

구성진 목소리에 섞여 나오는

엿가락 같은 가잇소리에

코흘리개 아이들의 코딱지가 떨어지고

호주머니에 담긴

텅텅 빈 가난들이 잘려 나간다.

 

엿장수 손바닥에 찢어흐르는 땀방울

그 땀방울에 늘어진 엿가락이

골목길을 따라 돌면

철거덩 철겅

가잇소리도 신명이 울라

-고물 삽니다 고오물!

헌남비나 비니루, 신문지, 책,

놋쇠 쪼가리,

울다 남은 울음이나

끈적하게 불어다니는 배고픔 같은 것도

모두 다 삽니다. -

 

판잣동네 골목길을 요리조리 누비다

목이 쉬어버린 엿장수

철거덩 철거덩

철겅 철겅... ....

무딘 가잇질로

긴 긴 여름해를 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