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실 동화 작품론
틀을 깨는 새로운 인식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 『만국기 소년』,유은실 작품론
박월선
아동문학이 출현할 때쯤 성인문학은 이미 여러 세기에 걸쳐 구축된 문학적 시스템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문학의 분류가 수천 년 동안에 성취한 것을 아동문학은 단 삼사백 년 사이에, 혹은 어떤 나라에서는 그보다 훨씬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루어냈다.
대부분의 아동 문학은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마다 선명한 시작과 끝이 있고, 도입 상황. 갈등. 클라이맥스와 해결이 있고 고전적인 플롯을 보여주며, 장르를 결정짓는 확고한 배경이 있고, 사건은 시간 순서에 따라 일어나고, 등장인물들은 뚜렷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언제나 선명한 메시지와 교훈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아동 문학 작가들은 이런 시스템에 대항하여 새롭고 매력적인 테마와 새로운 서술 장치를 만들어냈다.
2005년의 아동문학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작가 유은실의 작품 3권을 중심으로 몇 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첫째, 새로운 타입의 서술 방식이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2005의 작품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의 작품을 텍스트 속으로 가져와서 작가는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린드그렌의 작품을 소제목으로 설정하고 주인공 ‘비읍’이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아이들은 린드그렌 작품을 좋아한다. 작가는 린드그렌의 명성을 등에 업고 새로운 서사구조를 시도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유은실은 「내 이름은 백석」2004년, 겨울호 단편을 통해 등단했다. 작가는 ‘백석’이라는 커다란 이미지를 작품 속으로 끌어와서 대조되는 등장인물들을 설정하고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불러오고 있다. 성공적이다. ‘백석은 문학사에 큰 시인과 동명이인이다. 어느 날 학교 선생임이 백석시인의 시를 암송해보라는 명령을 받고 시인 백석을 알게 된다. 멋진 외모와 지식인 백석과 대조 된 아빠의 닭 집, 배경 설정과 대거리 닭 집이라는 유머를 않지 않는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설정에서나 장소 설정에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작가가 시도한 새로운 타입의 서술 방식은 동화를 읽는 독자들에게 새로움에 대한 설레는 마음과 텍스트 속에 나오는 작품들을 찾아 읽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아주 좋은 현상이라 생각된다.
둘째, 등장인물들과 배경 설정에서 유머 감각이 있다.
유은실의 작품을 읽다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주인공 이름 비읍이에 관한 부분이 재미있다. 아빠는 학교에 들어가서야 선생님한테 ‘ㅂ'을 배웠대요.
갓 태어난 너를 보았을 때 아빠는 비읍이 떠올랐단다. 비읍을 알게 된 날부터 아빠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거든. 너는 아빠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아이란다. 그래서 비읍이라고 지었단다. 사랑하는 딸 비읍아, 이름에 불만 없지? -43쪽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 도우미 할머니는 옛이야기의 마고할미처럼, “나는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싫어.”라는 말을 반복 사용한다. 이런 반복적인 대화 내용이 재미있다. 마고할미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할머니 캐릭터 설정도 독특하다. 유은실이 동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텍스트들은 독특한 효과를 발휘한다. 도우미 할머니 캐릭터의 등장으로 『마고할미』, 정근 글, 보림출판사 책을 한 번 읽게 되었다.
「내 이름은 백석」,
“내 이름의 뜻은 이름 쓰느라고 고생할 일을 생각하니까 두 글자 이름을 지을 수가 없더라. 성을 바꿔 줄 수 없고. 이름이라도 쉽게 쓰라고 한 글자로 지은 거야.”-10쪽
“천재 시인 백석? 나는 천재도 아니고 시도 잘 못 쓰는데……‘-12
“도둑놈이 아니라 다행이다. 도둑놈보다 시인이 좋더라.”
나는 시인 백석이 맘에 들었다. 머리 모양이 좀 촌스럽긴 하지만 얼굴이 멋졌다.
작가는 천재 시인 백석의 이미지와 아주 대조적인 아빠의 캐릭터를 설정한다.
우리 가게 이름은 ‘대거리 닭 집’이다. 아빠가 큰 대자로 바꾸면 유식해 보일 것 같아서 바꿨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 별명이 닭대가리이다. “내 별명이 ‘용머리’였어 봐 괜히 우리 닭이 수입산이라고 헛소문을 냈을 걸.”
작가는 대화에서도 풍자적인 의식을 잊지 않는다.
놀랍다. 백석시인의 이미지를 자신의 동화 속으로 가지고 와서 새로운 동화를 썼다는 용기에 놀랍고 이런 생각을 해내는 그의 창의적인 발상이 놀랍다. 부럽다.
셋째, 소재를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이 있다.
유은실은 기존 동화에서 많이 다루었던 “치매”라는 소재를 접근 하는데 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엄마 없는 날」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등장은 흔한 소재이다. 그러나 작가는 엄마를 텍스트 밖으로 보내고 오직 어린이만 등장한다. 작가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문제가 아닌 어린이의 시선을 그리기 위해 엄마를 텍스트 박으로 내 보냈다. 그래서 이야기 안에는 오직 어린이 분이다. 엄마의 존재를 사라지게 하자, 치매 문제를 오직 어린이들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해결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손님」, IMF이후 등장하는 흔한 소재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 손님이라는 존재가 한 가정의 분위를 이렇게 바꿀 수 있구나, 이야기를 모두 읽고도 손님이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지금도 궁금하다. 그 손님이 누구인지.
「만국기 소년」, 진수는 쉬지 않고 말한다. 입으로 만국기를 뽑아내는 마술사 같다. 진수가 뽑아내는 만국기가 교실을 채우고, 교실이 운동장이 되고,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진수가 보이지 않는 만구기로 교실을 꽁꽁 묶어 버린 것 같다. 교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28
“네가 외운 나라 중에서, 너는 어느 나라에 제일 가 보고 싶니?”
진수는 대답이 없다. 그 대신 진수의 얼굴에 펴정이라는 게 생겼다. 슬프고 질린 표정. 나는 선생님이 그걸 묻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은실은 헌책방에서 사 모은 40여권의 린드그렌 동화책을 읽고 비읍이가 되어 독서감상문 쓰듯 동화를 쓴 것이 커다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어쩌다 한번 쓴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다 쓴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하는 부모가 만든 환경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녀는 문학적 배경지식을 많이 흡수 하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도 백석이 쓴 시를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읽고 싶다는 강한 의식이 고개를 든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또 다른 효과를 얻은 것이다.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날아다니는 상상을 좋아하는 작가는 동화도 자유롭다.
나도 유은실 작가처럼 재미있는 동화를 쓰고 싶다.
마고할미가 일깨워준 것
-오진원(오른발 왼발 운영자)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유은실 글/전종문 그림/바람의아이들/2005년)
한 해는 참으로 기분 좋다. 눈에 띄는 좋은 작품, 기대되는 신인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벌써부터 2005년 결산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좀 쑥스러워진다. 하지만 조금 이르면 어떠랴. 작가 유은실은 지금까지의 성과만으로도 이미 2005년 한 해 동안 충분히 그 빛을 발하고 있으니 전혀 거리낄 게 없다.
유은실은 2005년 벽두에 첫 작품인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창비) 출간하며 화려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몇 달 뒤 『우리 집에 온 마고 할미』(바람의아이들)라는 작품으로 다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줬다. 두 작품은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한편으론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건 두 작품 모두 그 속에서 또 다른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은 린드그렌의 작품을 새롭게 즐기면서 빠져들을 수 있게 했고, 『우리 집에 온 마고 할미』는 우리 옛이야기를 지금 현실의 세계에서 다시 되새겨보게 했다.
그런데 난 어쩐지 두 작품 가운데 『우리 집에 온 마고 할미』쪽에 좀 더 마음이 끌린다. 첫 문장부터가 예사롭지가 않고, 결국 마고할미의 독특한 캐릭터로 빨려 들어가게 했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나서는 마고할미를 떠올릴 때마다 이런 저런 새로운 생각이 더해진다. 아무래도 마고할미는 ‘우리 집’으로도 찾아와 심통(?)을 부리고 있는 듯하다.
도우미 할머니가 오셨다.
아빠보다 키가 크고
발도 커다란 할머니가
큰 가방을 들고
우리 집에 나타났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마치 시처럼 행갈이를 해놓았다. 하지만 전체가 다 이렇게 쓰여진 건 아니다. 작품 중간 중간,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만 이런 식으로 행갈이를 해 놓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런 식의 행갈이는 작품의 화자인 ‘나’가 할머니를 놀랍고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는 경우에만 나타난다. 덕분에 할머니의 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할머니가 진짜로 마고할미인지는 알 수 없다. 화자인 ‘나’ 역시도 처음부터 할머니가 마고할미라고 확신을 하는 건 아니다. 『마고할미』 책을 보고, 할머니랑 같이 별을 보던 날, 마고할미란 말만 듣고도 화를 내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나’는 할머니가 마고할미임을 확신한다.
‘나’가 할머니를 마고할미로 받아들이던 날, 그 날은 마고할미가 ‘나’에게 우리 옛이야기 속의 인물을 새롭게 불러낸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아는 이야기는 책에서는 보지 못한 내용이 덧붙여 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아직까지도 티격태격 싸우느라고 꼭 따로 나온다거나, 옥황상제가 견우직녀에게 벌을 내리자 직녀 친구들이 옥황상제님이 견우 대신 밭을 갈아주고 또 장롱 속에서 옷감을 꺼내 나눠주라고 항의를 했다거나, 선녀 엄마 따라 두레박 타고 하늘로 올라간 애들이 외할아버지한테 ‘납치범의 자식들’이라며 구박을 받는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조금 황당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가만 보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는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작가가 긴지민지 모를 마고할미를 등장시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작품에서 마고할미란 어떤 존재일까가 궁금해진다.
마고할미는 원래 하늘을 열고, 강바닥을 손으로 죽죽 긁어서 산을 만들었던 거인이다. 하지만 우리 집에 온 할머니는 마고할미랑 견줄 수도 없을 만큼 작게 쪼그라들어 있다. 아빠보다 키가 크고 발도 커다랗긴 해도 결국 보통 사람 수준일 뿐이다. 그럼 도대체 마고할미는 왜 이렇게 작은 모습으로 이 집에 나타나게 된 걸까?
‘나’의 집 분위기를 잠깐 보자. 집안 살림은 오랫동안 아빠가 맡았다. 아빠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엄마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빠가 공무원 시험에 붙어 동사무소에 다니지만 엄마는 너무 바빴기 때문에 집안일은 여전히 아빠가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빠는 점차 집안일을 싫어한다. 와이셔츠를 잘 다려서 속상해진다. 엄마 아빠는 분위기가 심각해지고 만다.
사실 이 작품에는 집안의 모습은 최소한으로만 보여줄 뿐 겉으로 많이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 작품에서도 마치 배경처럼 살짝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서술이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데 마고할미가 등장하는 바로 그 시기는 집안의 중심이었던 엄마의 위치가 흔들리는 때였다. 이전까지 엄마는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또 아이와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으로 집안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공무원이 되어서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서 점차 집안 일을 잘 한다는 건 남자답지 못한 일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와이셔츠를 잘 다려서 속상하다는 말은 그 반증이고 말이다.
바로 이 순간에 등장한 게 마고할미다. 마고할미는 한순간에 엄마 아빠의 갈등의 원인을 해소해준다. 만약 마고할미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집안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할 수 있다. 엄마 아빠가 헤어지지 않는 이상 엄마는 결국 일을 포기하고 집안 사림을 해야 했을 것이다. 엄마의 직업이 ‘결혼 기획 전문가’라는 점을 생각할 때 엄마가 일을 위해서 헤어지지는 못할 거라는 걸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고할미는 집안에서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엄마를 구해주려고 나타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마고할미는 옛날엔 하늘까지 닿는 거인이었던 자신이 조그라든 현실을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덮으면 조금 괴팍스럽긴 해도 당당한 마고할미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마고할미가 들려준 ‘견우직녀’ ‘나무꾼과 선녀’ 역시도 마찬가지로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확실해진다.
우리 집에 왔던 마고할미는 떠난다. ‘나’가 할머니가 보지 말라고 했던 방안을 봤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하지만 할머니가 쓰던 방 한가운데서 주운 흰 머리카락 한 올이 ‘나’에게 남아있는 한 마고할미는 아주 떠난 건 아닐 것이다.
《기획회의》31호(2005년 10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