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아동문학

제9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한우리독서토론논술 2008. 1. 8. 18:18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공모전 소식

2008/01/04 19:33

http://blog.naver.com/bamtee94/70026028989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이영서 『책과 노니는 집』 

심사소감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관심

올해는 11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라왔다. 예년보다 두 배 이상 양이 많다. 작품 수도 작품 수지만 작품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장르와 그 다양한 표현방식들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다양화된 관심이 흥미로웠다. 우리 어린이문학의 저변이 넓혀지고 있는 징표로 보여 반가웠다.


하지만 응모작품들이 한결같이 초등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은 한계로 보였다. 사실 어린이문학에서 독특한 언어감각과 상상력을 본격적으로 요구하는 영역은 초등 저학년과 중학년이다. 저학년 동화는 우리말의 기본 특질에 바탕한 섬세한 리듬감과 어린이의 시원적 상상력이 어른들의 세계와 부딪쳐 만들어내는 미묘한 심리적 움직임을 결합하여 간명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갖는 서사적 얼개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좋은 시를 쓰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중학년 동화는 섬세한 리듬감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어린이의 언어감각을 바탕으로 아이의 상상력이 어른들의 세계와 부딪쳐 만들어내는 심리적 움직임을 본격적 갈등구조를 갖는 서사적 얼개로 짜내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게 어렵다.


응모작들이 한결같이 고학년 대상의 동화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 어린이문학 창작의 저변이 넓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어린이문학의 특질에 천착하는 차원으로 깊어지고 있지는 못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은 응모작들 전반이 어린이의 언어감각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데서도 드러났다. 어린이문학 창작에 대한 관심이 어린이의 특질에 천착하는 차원으로 심화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떠돌이 섬 우토로」는 일제강점기에 징용으로 갔다가 징용지 일본에 남은 교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인물 창조 등 형상화가 덜 되어 르포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름 낳는 날」은 왕따시키는 아이와 당하는 아이가 이름을 잃고 환상계로 들어가 이름을 찾는 이야기인데 환상계가 억지스럽다.

 

「참새의 장례식에 당신을 초대합니다」는 인물들이 놓여있는 상황 설정이 모두 극단적이어서 있을 법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우리 반 장영실」등 단편 모음은 세 편 정도는 무난했으나 밋밋했다.

 

 「고려에서 날아온 학」은 어린이문학 쪽에는 희귀한 추리물로서 재미있게 읽히기는 하는데 어린이 주인공들이 그럴 수 있을까 싶은 무리한 설정이 많고, 일반 추리물에서 보았던 대목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게 흠이었다.


「두두리왕 부리」는 삼국유사의 비형랑 설화를 판타지로 확대했는데 앞부분의 주제의식이 중간에 사라지고 뒷부분에선 퇴마 이야기로 간 것 같아 아쉬웠다. 역사적 소재의 해석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림자 정원으로 오세요」는 구성은 흥미로우나 문장 등이 아직 거칠었다.


「세상 사이 이야기」는 무척 안타까웠다. 서사무가에 대한 공부가 깊고 그것을 작품으로 짜내는 구성력도 상당하다. 하지만 서사무가 세계 자체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 문학 장르도 하나의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지켜야하는 룰이 있다. 물론 끊임없는 자기갱신이 문학의 한 본질이긴 하지만 그 자기갱신도 룰이 허용하는 극한을 가보는 것이지 그 룰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어린이문학은 그 특성상 그 룰이 더 보수적으로 작동하는 측면이 있다.


「세상 사이 이야기」는 현실계에서 환상계로 들어갔다가 다시 현실계로 돌아오는 판타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장르에서는 환상계의 전개가 현실계에서 발생한 문제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환상계의 전개가 현실계의 문제와 관련되는 범위를 크게 벗어날 수가 없다.

 

「세상 사이 이야기」는 이 룰을 어기고 있다. 그래서 현실계의 문제나 그 문제 때문에 환상계로 여행하는 인물은 서사무가의 환상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한 빌미 이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주와 종이 바뀌면 독자는 얼마 안 가 흥미와 그 작품을 이해해갈 끈을 놓치게 된다. 문학작품이 약속이라는 것은 이야기 상대가 있는 대화라는 것을 의미한다.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대화의 룰을 벗어나는 부분을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제외시켜가다 보니 논의가 「꿈꾸는 행성」, 「다릿재 삼 남매」, 「책과 노니는 집」으로 압축되었다. 「꿈꾸는 행성」은 우리 어린이문학에서는 드문 S.F로서 수준급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으나 여러 가지 디테일에서 결함이 지적되었고, 그 디테일의 결함 중에는 구성상의 결함으로 연결되는 것도 있었다. 「다릿재 삼 남매」는 어머니가 가출한 삼 남매의 이야기로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으나 그 이야기가 30년 이상의 세월을 넘어 어떻게 지금의 아이들에게 닿을 수 있을지 고리가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논란 끝에 「책과 노니는 집」을 대상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책과 노니는 집」은 서학이 들어오고 천주교가 탄압을 받던 조선조 말 전문 필사쟁이를 아버지로 둔 장이라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천주학 책을 필사한 것 때문에 천주학쟁이로 몰려 매를 맞아 죽은 뒤 책방의 책 심부름으로 시작하여 전문 필사쟁이로 성장해 가는 이야기인데 한 아이의 눈을 통해 그 시대상을 잔잔하지만 정밀하게 그리고 있어 기왕에 있었던 어린이문학의 역사물들과는 다른 신선함을 느끼게 했다. 기왕의 역사물들은 대개 잘 알려진 영웅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위인전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인물보다는 그 시대의 역사적 사건이 중심이 되어 은연중에 학습 효과를 추구하는 것들이 많았다. 「책과 노니는 집」은 그러한 역사물의 교훈주의를 깨끗하게 뛰어넘어 본격적인 역사동화의 장을 열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 작품이 다루는 시대의 사회와 생활에 대한 정밀한 접근이 필요한데 「책과 노니는 집」은 그런 안목을 갖추고 있다. 우선 영·정조 이후의 시기를 다룬 것부터 그렇다. 그 시대 사회와 생활상의 복원이 가능한 것은 최대한 올려 잡아야 영·정조 이후이다. 그 이상의 시대로 가면 그 시대 생활상의 디테일을 복원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무리 사실적 기법을 사용했더라도 역사 판타지 이상이 되기 어렵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서민 계급이 부를 축적하면서 나타난 전문 이야기꾼, 그 연장선에 있는 전문 필사쟁이를 이야기의 초점에 둔 것도 작가의 만만치 않은 역사적 안목을 짐작케 한다. 전문 이야기꾼과 전문 필사쟁이는 성장하는 서민계급이 만들어낸 문화의 꽃이자 그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지식 정보가 오가는 교차점이어서 그 시대를 내부로부터 조망할 수 있는 유력한 지점인 것이다.


「책과 노니는 집」은 위와 같은 역사적 안목과 함께 어린이문학으로서의 미덕을 가지고 있다. 짧은 단문의 깔끔한 문장도 그렇거니와 특히 장이라는 어린아이의 시각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있는 점이 그렇다. 대개 문제적인 역사시기를 다룰 때 작가는 그 시대 문제를 더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리기 마련이고 일정 정도는 그 유혹에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책과 노니는 집」의 작가는 그러한 유혹에서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벗어나 있다. 장이라는 어린아이가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정확하게 그 시대 삶을 그리고 있다. 상당한 문학적 훈련의 결과라 여겨졌다.

위와 같은 이유로 「책과 노니는 집」이 대상 수상작으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보았다. 더욱 정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