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아동문학

우리교육 어린이책 작가상 창작부문 심사평

한우리독서토론논술 2008. 4. 24. 20:53

◎ 제4회 우리교육 어린이책 작가상 창작부문 당선작 류성렬 씨의 《너나들이 마을》

◎ 기획부문에는 당선작이 없습니다.

올해로 네 살이 된 ‘우리교육 어린이책 작가상‘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제4회에서는 모두 아흔두 분이 작품을 응모해 주셨습니다.
창작부문에 여든네 분이 응모해 주셨습니다. 예심과 본심으로 나누어 심사가 이루어졌으며, 예심에서 동화와 동시를 나누어 심사하였습니다.

· 예심 심사위원 - 동화: 김남중(동화작가), 최나미(동화작가) / 동시: 김은영(동시작가)
· 본심 심사위원 - 박상률(동화작가), 이재복(아동문학 평론가)

기획부문에 다섯 분이 응모해 주셨습니다. 예심과 본심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심사하였습니다.

· 심사위원 - 조호상(어린이책 작가)

그 외에 세 분이 유아용 그림책 원고를 응모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교육 어린이책 작가상은 유아용 그림책을 심사하지 않아 심사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교육 어린이책 작가상에 응모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류성렬 씨의 당선 소감 바로가기

다음은 각 부문별 심사평입니다.

◈창작 부문

<제4회 우리교육 어린이책 작가상 창작부문(동화) 본심 평>

본심에 4편이 올라왔다. 《오월의 불꽃놀이》와 《다릿재 삼 남매》는 지난 시절 이야기이다. 흔히 후일담 문학이라고도 한다. 지난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오늘 아이들에게 흥미롭게 읽히려면 무언가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언어의 힘이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잃어버리고 정신없이 달려온 어제의 나를 되돌아보는 거울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냥 지난 시절의 아련한 추억으로만 끝이 난다면 그 이야기를 지금 아이들은 읽어 내기가 힘들 것이다. 어른들에게는 역사가 마음속에 만들어 놓은 온갖 감각을 깨우는 정서의 흔적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역사는 낯선 공간이기 십상이다.

《오월의 불꽃놀이》는 5·18 이야기이다. 제도 권력이 인간의 상상력을 억압하던 개발 독재 시대에 일어났던 암울하고 어두운 상처들을 지금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로 알릴 것인가. 이미 아이들은 밥 문제가 해결되고, 지배 권력이 무차별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시대에서는 벗어나 있다. 후일담 문학이 오늘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지나간 시공간이 오늘 우리 삶을 되비쳐 주는 일종의 상징으로까지 읽혀야 할 것이다. 이게 쉽지가 않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교훈을 아이들 마음에 되살려, 제도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어떤 깊은 성찰의 계기를 주는 데까지 나가야 한다. 《오월의 불꽃놀이》는 주제 의식은 높이 살 만한데,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 관계의 그물들이 조금 엉성한 느낌을 준다.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절대 이 오월을 잊지 마라’고 강조하는 대화나, 승수 엄마가 고등학생 아들을 잃어버린 뒤 슬픔도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서 ‘광주를 위해 지 목숨을 바쳐 부렀단다’고 하는 장면들이 너무 주제 의식에 사로잡힌 결과 이야기를 관념으로 읽히게 하는 점이 있다. 민중의 힘을 보여 주기 위한 예로 등장시킨 망태 할아버지 캐릭터도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월에 학생들이 다 죽어 버려서 독서실이 안 돼 이사를 간다는 설정도 주제 의식과 현실 사이에 조금은 괴리가 있는 발상이 아닌가도 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작품은 우리 아동문학이 한번은 꼭 넘어야 할 부채와 같은 문제를 잊지 않고 형상화시키려 하였다. 작가 정신에 대한 믿음이 작품을 끝까지 읽게 하였다.

《다릿재 삼 남매》는 그야말로 배고픈 시절의 이야기이다. 형제 많은 시골에, 부쳐 먹을 땅뙈기도 없고, 엄마는 가출하고, 아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자라는 암울하고 어두운 시절의 이야기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후일담 문학이 오늘 아이들에게도 흥미롭게 읽히려면 무언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삶이 시간의 흐름을 넘어 보편적으로 읽히는 원형이 되는 성격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내면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건의 전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음이 실린 문체의 힘이 요구되는데, 이런 점에서 《다릿재 삼 남매》는 좀 더 다층의 의미로 해석되는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사유의 힘이 요구된다. 《다릿재 삼 남매》는 가난 속에서도 피를 나눈 형제들이 아기자기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웃음 나기도 하고 눈물 나기도 하는 장면들이 들어 있어서 읽히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오늘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밥의 문제는 해결된 아이들에게 배고픈 시절의 이야기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가족이 해체되어 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던 전통적인 가족 제도가 도전을 받으면서 눌려만 살던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 나서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가족의 해체는 보는 이에 따라서는 위기이면서 한편으로는 남녀가 그야말로 양성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과도기 현상으로도 읽을 수가 있다. 지난 시절의 눈물 나는 이야기가 오늘 아이들에게도 의미 있게 읽히려면 옛날 전통적인 가족 제도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내면이 담고 있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탐구가 있어야 한다. 그냥 지난 시절의 형제애를 느끼게 하는 따뜻한 감정을 나누는 이야기는 오늘 우리 아이들의 삶에 추억담은 될 수 있겠지만, 새롭게 마음을 움직이는 영웅이 되는 캐릭터는 되기 힘들 것이다.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가 오늘도 생생한 현실의 이야기로 읽히려면 어떤 이야기의 요소들이 필요한지, 좀 더 많은 탐구를 필요로 한다.

《난 원래 공부 못해》는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야기 자체가 일단 생동감을 준다. 제목도 마음에 든다. 어른들이 내세우는 성적 지상주의에 세뇌당해 주눅 들어 사는 아이들이 많은 요즘, “난 원래 공부 못해.” 하고 당당하게 나오는 아이는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하다. 간결한 문장에 경쾌함이 들어 있다. 그런데 어린 화자가 너무 완벽하고 어른스러워 만들어진 아이로 느껴지는 한계가 있다. 나름대로 의욕에 찬 젊은 여자 담임선생님과 똑 부러진 이진경의 갈등을 통해 학습 지진아 찬이의 존재를 드러내려 했는데 회화화된 장면이 너무 많이 보여 작품에 대한 신뢰가 조금 떨어지는 느낌도 있다. 공부는 못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선생보다 앞서는 찬이를 보여 주려 했는데 이런 발상도 조금은 도식적으로 보인다. 저학년에서 중학년 아이들 정도의 삶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야기는 장편으로 너무 길다. 분량을 좀 더 줄이고, 이야기도 좀 더 속도 있게 전개하면서 대립적인 구도의 인물이 드러내는 장면을 풍자와 해학으로 처리한다면 한 편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씨앗을 많이 품고 있다.

《너나들이 마을》은 판타지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드나드는 마을의 이야기이다. 판타지의 본질은,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는 있는 내면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화시킨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타지는 우리 마음속 우주에서 일어나는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또 한 편의 리얼리즘 문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세상만 현실이 아니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그 사람 존재의 본질을 더 많이 품고 있는 마음속 또한 생생한 현실인 것이다. 마음속 현실과 마음 밖 현실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서로 양쪽의 세계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작품 속 시공간은 상당히 흥미로운데, 한 가지 너무 관념적이다. 이야기의 힘으로 판타지 공간이 드러나지 않고, 작가가 작품 속에 들어와 무언가 자꾸만 설명하고 해설을 한다는 느낌을 준다. 아이들이 내면 마음속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때는 보통 현실의 삶에서 어떤 고통을 느낄 때이다. 무언가 간절한 바람을 갖고 있을 때이다. 물론 그냥 마음속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조차도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무언가 내면의 원인은 있는 것이다. 너나들이 마을은 뒤로 가면서 주인공 아이가 내면 무의식의 세계인 너나들이 마을로 여행을 떠나는 계기를 통해 엄마와 아빠의 갈등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어른들의 갈등이 아이가 겪는 한 번의 사건으로 인해 봉합되는 장면은 조금 안이한 해결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판타지 공간이 마치 기차가 레일 위를 달리듯 명쾌한 이야기 속도를 가지는 방향으로 한 번 더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보통 판타지 시공간은 작가가 머리로 구성한 공간이 아닌 마음속에서 발견한 공간이라고들 한다. 판타지 공간은 발견이면서 구성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가 내면에서 발견한 공간을 어떻게 새로운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구성하는가. 이 구성하는 힘이 바로 사유에 해당하는 고통스런 창작의 과정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 아동문학은 판타지에 대한 탐구를 더욱 필요로 한다. 많은 작가들이 아이들 내면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어 아픈 마음을 치유해 주고, 즐거운 마음에 정신 놀이가 되는 사유의 힘을 불어넣어 주는 판타지 작품을 더 많이 써야 할 때이다. 《너나들이 마을》도 판타지에 대한 탐구를 하는데 어떤 의미로든 새로운 힘을 보태는 작품의 무게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을 수상작으로 할 것인가. 어떤 작품이든지, 응모작들은 그 나름의 가능성과 한계를 갖고 있는 법이다. 응모작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이 역시 중요하게 보는 관점 가운데 하나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보여 주는 탐구의 힘이다. 사유의 힘이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이야기꾼의 힘이 드러나 보이느냐는 점에도 관심을 갖는다. 등장인물을 내세워 집요하게 존재의 본질을 탐구해 가는 작가 정신이 어떻게든 드러나 보여야 한다. 이런저런 점을 놓고 여러 가지로 고민한 결과 이번 제4회 우리교육 작가상 창작부문 수상작으로는 《너나들이 마을》로 정하기로 하였다.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이번에 응모를 해 준 많은 작가 지망생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이야기는 끊임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부디 실망하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정진하여 내년에도 좋은 작품들을 응모해 주시기 바란다.

창작부문 동화 본심 심사위원 _ 박상률(동화 작가), 이재복(아동문학 평론가) *가나다 순




<제4회 우리교육 어린이책 작가상 창작부문(동화) 예심 평>

깊거나 새롭거나
흔히 제목과 첫 문장에서 작품의 인상이 결정된다고 한다. 응모작들이 수북하게 쌓인 공모전에서 읽는 이의 첫 눈길을 끌려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원칙이겠다. 눈길을 끌고 읽어 가는 내내 손을 떼지 못하게 해야 하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가슴을 울리는 여운을 남겨 읽은 이가 망설이지 않고 손을 들어 줄 수 있는 작품, 그런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심사를 떠나 동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큰 기쁨이다.
아쉽게도 제4회 우리교육 작가상 창작부문 동화 응모작들을 읽어 가면서 느낀 기쁨은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첫인상으로 전체를 평가하는 우를 범할까 싶어 전 작품을 마지막 마침표까지 읽어 내려갔고 몇몇 작품을 거듭 정독하는 과정에서도 아쉬움이 컸다.
응모작들은 소년소설, 장·단편 동화, 유아 동화, 그림책 등 어린이 문학 장르 전반을 아우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장편 동화는 일제 시대부터 6, 70년대에 이르는 회고담류가 주를 이루었고 단편에 있어서는 생활 동화류의 단편과 판타지물의 구성비가 컸다.
응모작들을 읽으며 크게 고민했던 부분은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다양성의 부재였다. 주류를 이루었던 회고담류의 동화들에서 ‘그때는 그랬지.’ 식의 자기 만족형 회상을 넘어서 현재에도 분명히 존재할, 시대를 초월한 과거와 현재의 공통분모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표토 같은 개인사의 재현에 만족하지 않고 더 깊은 지반을 파고들려는 자기만의 노력을 찾을 수 없어 그저 미소 띤 돌아보기에 그친 작품들이 많았다. 과거를 경험치 못한 어린이들도 공감할 수 있는, 시대를 관통하여 현재에도 존재할, 변치 않을 중심을 찾아내려는 치열한 시도가 필요하다. 지나온 바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게 아니라 바다에서 꺼낸 진주를 보여 줘야 하지 않을까?
응모작들에 드러난 현실 인식의 문제도 다르지 않았다. 전통적인 가정의 해체와 새 결합, 성폭력, 경제적인 어려움, 집단 따돌림 등 더 이상 새롭거나 충격적이지는 않으나 꾸준히 더 이야기되어야 할 소재들이 빠짐없이 제시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나열하기에 그치고 작가의 색깔이 필요한 단계에서는 슬며시 한발을 빼는 듯한 작품들을 보며 사회 전반의 문제를 어린이의 문제로 구체화시키는 힘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린이들에게는 가정 해체나 폭력 등에 대한 체감치가 어른의 체감치보다 훨씬 높고 강한데 대부분 작품 속의 어린이들은 ‘애답지 않게’ 문제를 대하고 해결하기까지 한다. 적정한 눈높이를 찾고 유지하는 일은 동화 창작에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하고 매달려야 할 부분이다.
판타지물에서는 작품들의 완성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눈을 떠 보니 꿈이었더라 식의 응모작들이 많았고 주제 의식과 현실에 대한 균형 감각 부재가 눈에 띄었다. 판타지 세계가 현실 세계의 대칭으로 존재한다고 볼 때 문제 제기와 해결을 위한 인과 관계, 당위성의 설정도 그 세계 나름대로의 규칙(현실계에서 투영된)에 따라 진행되어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계가 언급되지 않는 판타지 공간에서도 읽는 이는 그림자로서의 현실계를 은연중에 인지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판타지 공간의 구체성에 공감하게 된다. 이번 응모작 중에는 탄탄하고 내밀한 판타지 세계의 창조에 성공한 작품들이 드물었다. 판타지 장르는 지극히 ‘동화적’이므로 더 신중하고 치밀해야 읽는 이를 작품 세계로 매끄럽게 이끌어들일 수 있다. 오래 고민하고 어렵게 써야겠다.
문학적인 완성도가 전제되어야겠지만 소재나 스타일 면에서 새로운 시도가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학교, 학원, 집이라는 철의 삼각 지대에 대한 동화들이 반복되지만 새로운 시선이나 접근이 눈에 띄지 않는다.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 이야기하는 노력, 시선을 멀리 두고 다양한 세상과 경험을 제시하는 패기를 보고 싶었으나 희망 사항에 그치고 말았다. 깊거나 새로운 작품을 보고 싶다. 깊고도 새롭다면 더 좋겠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작품들이 몇 편 있었다. 꼼꼼히 읽고 논의를 거쳐 예심 통과작으로 최종 선택된 작품들은 《너나들이 마을》, 《다릿재 삼 남매》, 《오월의 불꽃놀이》, 《난 원래 공부 못해》이다.
《너나들이 마을》은 읽히는 힘이 있고 탄탄한 구조를 갖춘 판타지물이다. 현실과 환상 세계의 대칭이 균형을 이루고 있고 읽어 가는 내내 하나씩 밝혀지는 너나들이 마을의 비밀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새로운 환상 공간의 창조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독자를 환상 공간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만만치 않다. 너나들이 마을로 불리는 환상 공간은 주인공인 재민이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내면 세계가 투영된 광활한 세계로 상처받고 병든 사람들의 내적 치유를 통해 건강한 세계를 구현하는 데 꼭 필요한 숨겨진 절반의 현실이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 단절된 관계의 실마리들을 찾는 가능성의 세계인 너나들이 마을, 모듬골 등지에서 벌어지는 모험은 현실에 치여 버려진 독자들의 꿈들을 되살아나게 하는 마법의 주문 역할을 톡톡히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너무 일찍 잊혀졌던 재민이의 꿈이 다시 살아났던 것처럼 말이다. 시점을 혼동케 하는 일부분과 의욕이 앞서 글의 흐름과 따로 노는 우리말 어휘 사용, 다소 장황한 설명 등이 덜컥 걸리게 하는 부분이 있어 아쉬움이 약간 남는다.
《다릿재 삼 남매》는 읽는 동안 내내 따듯한 웃음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6, 70년대의 가난한 농촌에서 없이 살아도 마음이 풍성한 걸이, 연이, 홍이 삼 남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장마다 살갑게 녹아 있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나름대로 생생하게 살아 있고 각자 입심이 꿈틀거려 생동감이 있다. 경상도 말투를 살려 읽어 가다 보면 절로 리듬을 타 술술 읽히는 문장도 매력적이다. 다만 이야기가 연이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데 반해 연이의 역할과 속앓이가 나올 듯, 해결될 듯하다가 결실 없이 끝나 버려 허전한 느낌이 남는다. 전통적인 가족상이 해체되어 재편성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보더라도 여전히 중요하고 설득력 있는 가족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오월의 불꽃놀이》는 광주 민주 항쟁의 한복판을 경험하는 지웅이의 이야기이다. 광주 민주 항쟁을 다룬 기존 작품들도 여럿 있지만 《오월의 불꽃놀이》는 초등학생인 지웅이의 눈높이에 충실하여 의욕 과잉에서 비롯되게 마련인 과도한 의미 부여와 시점의 확대를 배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넝마주이인 망태기와 의기가 넘치는 고등학생 승수, 의식은 충분하나 유약한 삼촌, 어린 친구들이 시대를 관통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 준다. 불꽃놀이와 블랙홀로의 비약이 종전까지 꾸준히 변화하던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성급한 마무리를 지은 듯하지만 이만큼 버거운 주제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작품은 드물다 할 수 있겠다. 꾸준하게 이야기되어야 할 광주를 다시 한 번 성공적으로 되살린 작품이다.
《난 원래 공부 못해》는 예심 위원들 사이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던 작품이다. 초임 교사와 아이들 간의 갈등,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동화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소재이다.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교사의 의욕 과잉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빤히 보이는 마무리를 예고하고 있어 읽어 가는 내내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냉소적으로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초등학교 4학년인 이진경의 심리 변화가 마무리에서 급작스러웠다. 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바라본 교사의 모습이 신선했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들이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무엇보다 찬이를 두고 팽팽하게 당겨진 진경이와 연희 샘의 긴장 관계가 서로를 무시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내딛는 이해와 배려를 통해 해소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교실을 소재로 한 몇 편의 응모작들 중에 비교적 현실성 있는 이야기로 잔잔한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었다.

공모전에 응모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심사평에도 언급되지 않는다면 실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 오기가 생기기도 한다. 당선자 발표는 선택되지 않은 대다수의 응모자들을 좌절하게도 하지만 길게 보면 낙선 후 다시 시작되는 혼자만의 시간, 끝이 보이지 않는 습작 기간이 오히려 응모자를 성장하게 한다. 습작 기간이 긴, 많이 떨어져 본 작가가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고, 쓰게 되고, 가지고 있다. 왜 당선되지 않았을까를 고민하고 다시 시작해 보기를 감히 권해 드린다. 작품과 작가를 성장시키는 데 낙선은 약이다. 당장은 쓰지만 그만치 체질 개선에 좋은 약이다. 긴 습작기, 연락 없는 낙선의 기억들이 쌓여 갈수록 작가의 내공은 탄탄해지고 개인 창고에는 좋은 재목들이 쌓여 가기 마련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내 작품이 다른 작품에 비해 ‘깊거나 새로운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인정받는 동화 작가가 되어 우리교육 어린이책 작가상 관계자들에게 ‘4회 때 내가 낙선했다.’며 뼈 있는 미소를 건네는 훗날을 상상하며 위로를 삼으시기를 바란다.

창작부문 동화 예심 심사위원 _ 김남중(동화 작가), 최나미(동화 작가) *가나다 순




<제4회 우리교육 어린이책 작가상 창작부문(동시) 예심 평>

개성 있는 시인을 기다리며
올해에는 모두 서른네 명이 응모를 하였다. 실로 대단한 열기이다. 동시가 주 독자인 어린이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여 동시 문학의 위기를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니 그 열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동시를 써서 침체된 동시 문학을 되살리려는 시인들의 열망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미래의 동시 문학을 새롭게 이끌어 나갈 시인 지망생 또한 적지 않음에 안심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응모한 기성 시인들의 열망과 지망생들의 의욕에 비해 작품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실망을 하였다. 동시 장르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응모자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눈높이를 지나치게 낮게 인식하고 유아적 정서를 표현한 작품이 많았으며,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의 문학적 취향에 따라 어른의 관념이나 정서를 노출시킨 작품도 많았다. ‘동시란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던져 보길 바란다.
소재와 표현 방법 또한 눈길을 끌 만큼 새로움이 없었다. 더 이상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 힘든 진부한 소재로 쓴 개념 동시나 생활 동시가 대부분이었고 표현 기법도 식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시의 형상화 수준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시상이 정리되지 않아 장황하게 진술만 해 놓은 작품이 많았다. 이는 한 가지를 명확히 붙잡고 가장 적합한 시어를 찾아 단순하고 간결하게 표현해야 하는 시의 특성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안이한 시 쓰기 방식은 동시에 대한 인식 부족과 아동의 현실에 대한 탐구 및 실험 정신의 부재를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나마 네 분의 작품을 읽으며 위안이 되었다. 나름대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여 보여 주었거나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시도한 분들이라 할 수 있겠다. <병원에 간 산> 외 32편은 새로운 발상을 밑바탕으로 희화화하여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였으며, <우리나라 꽃> 외 68편은 중견 시인의 열정이 느껴지는 역작으로 여러 가지 꽃들을 간결한 시어로 형상화하였다. <춤추는 옷> 외 29편에서는 비판적 환경 의식이 담긴 바다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돋보였고 사물이나 자연 현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인의 노력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불법 주차한 엉덩이> 외 43편은 할머니와 시골 정서를 담아낸 작품들에서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었고, 어린이들의 생활을 소재로 재치 있는 발상과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이 더러 눈에 띄었다.
하지만 <병원에 간 산> 외 32편은 앞부분 두세 편을 제외하면 나머지의 작품들은 시상이 덜 익은 듯 완성도가 떨어졌고, 새로운 형태나 광고 문구 등을 차용한 실험 시는 오히려 도식적인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 꽃> 외 68편은 구성이 탄탄했지만 시인 자신의 주관적 정서가 주를 이루었으며, 묘사 또한 어린이들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에 견주어 <춤추는 옷> 외 29편과 <불법 주차한 엉덩이> 외 43편에는 재미난 발상과 인식의 새로움을 통해 빚어낸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간혹 눈에 띄어서 마지막까지 추천을 망설였다. 하지만 두 분 작품 또한 낡은 소재와 낡은 의미를 담아낸 작품들이 많아서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한계를 드러냈고 본심에 올리기에는 수준작도 턱없이 부족했다.

작품의 개성은 곧 시인의 생명이다. 작품에 개성이 없다면 이는 시인으로서 기존 문단의 고질적인 병폐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나 다름없다. 동시의 개성은 곧 시인의 새로운 인식과 차별화된 표현 방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들의 정서를 탐구하며 고뇌하고 새로운 실험 정신으로 작품을 빚어내는 치열한 시 정신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진정성이나 유쾌한 상상력을 밑바탕으로 어린이들과 소통하며 동시를 읽는 즐거움을 안겨 줄 만한 개성 있는 시인을 찾지 못해 아쉽다.

창작부문 동시 예심 심사위원 김은영(동시 작가)



◈기획 부문

<제4회 우리교육 어린이책 작가상 기획부문 심사 평>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몇 가지 떠올려 봅니다. 놀이, 만화, 게임, 점심시간, 이야기…… 가만 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는 하나같이 그 속에 ‘재미’가 들어 있습니다. 뭐 새삼스러울 것 없는 얘기지만요.
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글을 쓰는 사람이나 죄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책을 만들어 내놓을지 밤낮없이 골몰합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책은 따분하고 골치 아픈 물건이기 쉽습니다. 책읽기에 맛을 들인 아이들은 좀 어렵고 딱딱해 보이는 책을 넙죽넙죽 읽기도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무언가를 알려 주거나 가르쳐 줄 목적의식으로 펴낸 ‘지식 교양서’는 하품 나오게 할 확률이 엄청 높습니다. 읽다 말고 뒷전으로 미뤄 두거나 건성으로 책장만 훌렁훌렁 넘기고 말 수도 있습니다. 역시나 재미없기 때문이겠지요. 자칫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에 무턱대고 재미만 좇아 글을 쓸 일은 아니지만, 아무리 좋은 의미를 지닌 글도 재미를 빼고서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란 참으로 난망한 노릇입니다.
응모 작품들을 읽으면서 다시금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의 정서와 감각, 지식수준에 들어맞는 작품이 딱히 눈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응모 작품이 많지는 않았지만, 작품의 소재가 다채로웠습니다. 몸소 체험하거나 취재해서 쓴 작품도 있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평화 통신사가 되어 야스쿠니 신사에 가다》는 저자가 평화 통신사의 일원으로 활동한 것을 바탕으로, 일본의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가 어떻게 미화되고 있는지 보여 줍니다. 치열한 문제의식이 돋보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배경 지식이 별로 없는 아이들이 그 맥락을 따라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구성도 산란한 느낌입니다.
《꼬마 쌤의 별별 수업》은 꽤 오랜 기간 공부방에서 어린이 인권 수업을 진행한 결과로 나온 글입니다. 수업 과정을 잘 갈무리해 놓았지만, ‘짜임새 있는 좋은 자료집’을 뛰어넘지는 못했습니다.
《구름도 부처가 되는 곳, 운주사》는 운주사 답사 여행 기록인데, 운주사에 대한 평면적 해설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위대한 마술사 후디니》는 후디니의 일대기를 꼼꼼하게 잘 정리한 것 이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초벌 번역한 듯한 문장도 걸립니다.
《누구의 발일까?》는 유아 그림책 글로 여러 문화권에서 신는 전통 신발의 쓰임새와 특징을 잘 간추려 보여 주는데, 그 이상의 무엇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이 가운데 《평화 통신사가 되어 야스쿠니 신사에 가다》를 당선 작품으로 올릴까 망설였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현장 활동의 생생함이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아이들 앞에 내놓기에는 풀어야 할 숙제가 적잖이 남아 있어, 끝내 당선 작품으로 내놓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식 교양서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이끌어 내 ‘앎의 기쁨’을 맛보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자신의 글쓰기 방법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기획부문 심사위원 _ 조호상(어린이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