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현대인의 삶
「첫 번째 기념일」, 편혜영
박월선
이 소설은 모더니즘 소설이다.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진정한 인간관계도 갖을 수 없는 시대이다. 그리고 모더니즘에 그려지는 일상의 삶은 ‘사건 없는 일상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사건이란 과연 무엇이며, 모더니즘의 사건 없는 일상성이란 어떤 의미를 지지는 것일까. 사건 없는 일상성, 즉 아무 일도 없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모더니즘 미학은 과연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사건은 소설 속에서 인물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난다. 사건 없는 일상성이란 주객 상호연관의 부재, 즉 인물의 환경으로부터의 단절을 암시한다. 인물이 환경으로부터 단절된 상태는 인물 내면의 이상적 지향이 환경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도록 폐쇄된 세계에서 나타난다. 인물과 환경의 단절은 인간관계의 단절을 뜻하며, 그 파편화된 삶 속에서의 단절의 경험이 ‘소외’이다. 그러면 소설 속에서 모더니즘의 형상적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소설의 서두는 택배회사 직원인 주인공의 변함없고 고달픈 일상성을 보여준다. 현실은 너무 힘들다. 커다란 상자를 가슴에 안고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아파트 계단을 오른다. 어떤 날은 얼룩과 냄새로 젖고 어떤 날은 파손된 물건을 배상하기도 한다. 그의 환경은 너무 열악하다. 주인공이 만나는 환경의 피폐함을 아주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계단은 소각장처럼 어두컴컴하고 눅눅한 냄새가 났다.” 이 계단처럼 주인공도 열악한 환경임을 암시한다.
주인공이 만나는 환경은 재건축을 하고 있는 아파트 현장, 아파트는 곧 리모델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리모델링이 힘들다. 날마다 최종학력이 고졸인 이력서를 쓰면서 일상의 탈출을 꿈꾼다. 이룰 수 없는 일상의 탈출을 주인공은 이력서 사진의 다양한 표정으로 희화화 한다. “사진은 가급적 우스꽝스럽게 나오도록 찍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현실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고 소외됨을 내면의 심리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이력만으로 도시에 있는 직장에 취업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반지하방을 전전하는 생활이 나아질 리 없다는 생각에 치욕스럽기도 했다. 그게 뭐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치욕이나 위안이 인생을 바꾸지는 못했다.(P.225)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꾼다. 주인공은 택배회사 직원으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이력서를 쓰며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 시도하고 사진사도 새로운 직업을 찾는다. 또 ‘여자’는 관람차 시험 운행을 담당하며 매일 시간 재는 일을 한다. ‘여자’는 일상의 지루함을 홈쇼핑에서 새로운 물건을 주문하면서 이탈을 꿈꾼다. 인물들은 각자 일상으로부터 도피를 꿈꾸지만 현실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소외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이 고통의 심화를 인간관계는 단절로 보여준다. 초등학교 동창생인 사진사에게 택배회사 대리점 가입보증금을 받고 넘기려 시도하고 사진사와 대화도 무미건조하다. 인간과 인간이 만났지만 대화는 없다. 얄팍한 주간지에 시선을 둘 뿐이다. 초등학교 동창생이지만 인간관계는 없다. 오직 돈관계만 살아있다. 일상에서 소외된 ‘그’의 인간관계는 더욱 심화된다. 택배회사 직원과 물건을 주고받는 관계로 자주 만나지만 인간의 정은 없다. ‘그’와 ‘여자’의 관계는 거래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자주 본 얼굴인데, 생전 처음 본 것처럼 낯설었다. 문틈으로 본 여자의 얼굴은 무표정했고, 그래서 조금 차가워 보였다는 인상만 남아 있었다.’
사건 없는 일상성의 두 번째 예는 공포와 쾌감이 없는 관람차에서 나타난다. 관람차는 그의 인생처럼 느릿느릿 따분하게 흘러갔으며, 그는 아직 좁은 곤돌라에 함께 올라 탈 만큼 친밀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모더니즘 미학의 ‘낯설게 하기’를 통해 자동화 과정을 일상적 세계에 까지 확장시킨다. ‘그’는 연락이 없는 이력서를 계속 보내는 행위, 증면사진을 우스꽝스럽게 찍는 행위, 그 사진을 오려내는 행위, 여자의 물건을 자신의 물건처럼 뜯어보는 행위 등은 소외된 인간의 내면을 보여준다.
택배회사 직원인 ‘그’는 배달되지 못한 물건 값을 배상해줘야 하고 대리점 보증금도 받지 못하는 부정적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이 ‘낯설게 하기’의 행위는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일 시간을 지연 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게 다가온다.
고무나무는 공사현장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죽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물을 주어도 마른 뿌리를 살리기는 힘들 거였다. 노랗게 마른 잎사귀들이 먼지처럼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모자는 색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빛바랬다. 냄비는 흠집이 생겼다. 대나무 돗자리는 장판처럼 갈려 있었다.(P. 231)
이처럼 단절된 삶은 파편화 되어 현실로 다가온다. 즉 모더니즘이 부조화의 형상을 통해 화해의 열망을 객관화하는 동시에 실제로는 화해가 불가능함을 드러낸다.
어쩌면 물건을 주문하는 사람은 여자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니 물건값을 배상해 준 후에도 여자에게 주기 위해 관람차를 타러오게 될 거였다. 그는 여자 이름으로 뭔가를 주문하고 싶어졌다. (P.237)
이 소설은 외견상 아무 문제없이 ‘조화된’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외된 인물은 소외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한다. 단절된 인간관계를 어떻게든 잇기 위해 ‘그’는 여자를 찾을 것이다. ‘그는 여자의 이름으로 뭔가를 주문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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